[여행]/[국내]

[제천] 금월봉 너머 청풍호반에서 억겁 세월을 보았다

뚝섬 2016. 7. 13. 07:43

종이 만드는 채권병 부부와 제천 청풍호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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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 전 구석기 가족들 살던 동굴엔 신라 화랑들 흔적이
닥나무숲 물에 잠긴 청풍호반엔 한지 만드는 장인 고집이

山中 사찰 고산사엔 석조 나한 염화미소가
옛 사람 살던 치열한 흔적은 모두 여행 목적지로…

 

모든 일은 그리되었다. 처자식 먹여 살리려고 바둥바둥 살다 보니 그 흔적이 혹은 땅에 남아 기념물이 되고 혹은 우주 속 먼지로 변해 천지 만물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딱히 거창한 의도나 계획 없이 살다 보니 생이 만들어지고 완성이 되었다. 이 찌는 여름날 충북 제천 청풍호반을 한 바퀴 돌며 깨친 우리네 인생살이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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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0년 전 점말동굴 사람들

 

동굴 속에 살던 그들도 그랬다. 아비들은 사냥을 나갔고 어미들은 동굴 입구 빗장 단단히 여며놓고 아이들 젖을 먹였다. 양지 바른 굴 앞쪽 작은 평지에서 아이들은 흙을 가지고 놀았다. 샘에서는 물이 솟았다. 능선 너머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리면 어미들은 아이들을 둘러업고 굴속으로 숨어들었다.

 

소리는 코뿔소이기도 했고 원숭이이기도 했다. 들소, 동굴곰, 하이에나에 영양과 사향노루도 소리 주인공이었다. 사냥 나간 아비들이 코뿔소라도 잡아내면 동굴 마을에는 잔치가 벌어졌다. 66000년 전 동굴에 살던 한반도 가족은 그렇게 살았다. 66000년이 흘러 그 땅에 대한민국 제천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점말동굴

 

1967 6월 제천군 약재상에 용()의 뼈가 나돌기 시작했다.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약재다. 소문이 서울 사는 고고학자 손보기에게도 들렸다. 연세대박물관 고고학자 손보기는 1973 6 10일 제천 사학자 조석득과 함께 용뼈가 나온 동굴에 당도했다. 동굴 앞에 살던 거지들을 이주시키고 동굴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어둠 속에는 태고적 가족들이 먹고 남긴 짐승뼈, 짐승뼈로 만든 도구들이 층층이 쌓여 있었다. 공주 석장리와 함께 대한민국에 구석기(舊石器)가 존재했음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국사 교과서는 전면 개정됐다.

 

화랑들의 순례지

그런데 동굴 벽에 한자(漢字)가 무더기로 적혀 있는 게 아닌가. 사람 이름도 있었고, 관직명도 있었다. 동굴 앞 작은 공터를 뒤지니 돌로 만든 석가모니 탄생불도 나왔다. 기와 파편도 나왔다. 2009년 조사 결과가 나왔다. 각자(刻字)는 신라 화랑(花郞)이 순례지마다 새겨넣은 자기네 이름과 관등명이었다. 경남 울주 천전리 암각화에 새겨진 이름과 똑같은 이름도 있었다. 석기시대 가족들이 살던 그 동굴이 신라 청년들에게는 신성한 공간이요, 순례지였던 것이다.

이게 제천에서 봐야 할 첫 번째 흔적이다. 어떤 이는 동굴에서 가족을 부양했고, 어떤 이는 동굴에서 성스러운 의식을 치렀고, 어떤 이는 동굴에서 용뼈를 주워가 가족을 먹여 살렸고, 어떤 이는 동굴에서 그 모든 흔적을 찾아냈다. 발굴팀 또한 동굴 입구에 시멘트 박석을 설치하고 발굴 날짜를 새겨놓았다.

점말동굴로 오르는 길은 한적하다. 찾는 이가 없다. 동굴이 보일 무렵부터 분위기는 신비하게 변한다. 오로지 동굴 앞 공터에만 햇살이 내린다. 그 뒤 30m 높이 암벽에 동굴들이 뚫려 있다. 왜 구석기 가족이 이곳에 마을을 지었고, 왜 화랑들이 이곳을 신성시했는지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이 땅 모든 흔적의 시원(
始原)이 방치돼 있다는 느낌도 가질 수 있다. 아니, 천시받아서 신비하게 남아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청풍지(淸風紙)와 종이 만드는 채권병


  -종이 만드는 채권병-정연희 부부.

 

청주 사람 채권병(59)은 종이를 만들고, 아내 정연희(58)는 남편이 만든 한지로 공예를 한다. 채권병이 말했다. "할아버지가 종이 공장 하다가 고생 끝에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종이 꼴도 보기 싫다며 공장 처분하고 농사를 지었다. 그런데 내가, 제약회사 외판사원 하던 내가 지금 종이를 만들고 있다."

어느 왕조를 막론하고 중국에서 종이 하면 고려지(
高麗紙)였다. 비단처럼 얇고 윤기가 나는 데다 먹이 스며드는 정도가 적당하여 명나라 문인 도융(屠隆) '지묵필연잔(紙墨筆硯箋)'이라는 저서에서 "4세기 명필 왕희지가 사용한 종이가 바로 고려지"라고 추정했다. 도융은 "고려지는 비단처럼 누에고치로 만든다"고까지 했다. 채권병은 그 고려지가 다름 아닌 제천 청풍지라고 믿는다.

충주댐이 완공되기 전 제천에는 닥나무가 무성했다. 제천 사람들은 그 닥을 거둬서 종이를 만들었다. 제천읍내 제천중학교 앞에 넋고개가 있었다. 지금은 번화가가 됐지만 지난 세기 말만 해도 고개 좌우로 종이 공장이 많았다. 6·25가 끝나고 가난한 넋고개 가족들은 닥을 벗겨 찌고 삶아 종이를 만들었다. 한 집 건너 종이집이었다. 만든 종이는 남한강을 타고 한양으로 팔려나갔다. 하루에 화물선이 수십 척씩 떠서 종이를 날랐다. 제천에서 만드는 그 종이를 청풍지라고 했다. 제천 옛 지명은 청풍이다. 제천 사람들은 충주호를 청풍호라고 부른다. 고집이고 자존이다. 호수가 생기고 닥숲이 수몰됐다. 청풍지 만드는 사람들도 차츰 사라졌다.

종이에 대한 역대 왕조 관심은 대단했다. 세종은 이리 명했다. "왜국 종이는 단단하고 질기다 하니, 만드는 법도 배워 오도록 하라"(
倭紙堅 造作之法亦宜傳習·세종실록 41권 세종 10 7 1). 이후 제지 기술은 쇠퇴했다. 조선 중기 이후 종이는 불경을 자체 제작하는 절에서 만들어 민과 관에 보급했다. 이를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다. 전북 부안 땅에서 시서화로 이름을 날리던 기생 매창이 죽자 그녀의 글을 모은 문집이 나왔다. 부안 개암사에서 종이를 만들고 목판을 만들어 찍었다. 문집이 불티나게 팔렸다. 종이값을 대지 못해 파산 직전에 이른 개암사는 목판을 불살라버렸다. 그만큼 관에서는 종이에 무심했다. 찬란한 고려지 품질이 그리 쇠퇴해버렸다. 채권병이 말했다. "전주·원주·가평에도 종이가 있지만 제천 청풍지가 품질이 최고다. 고려지라면 당연히 청풍지다. 지금도 전국 웬만한 종이 장인들은 제천 출신이다."

 

-옥순대교에서 바라본 청풍호. 오른쪽이 퇴계 이황이 아꼈던 옥순봉이다.

 

문 닫은 종이 공장에 단골들이 출몰해 종이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그 모습 어릴 적부터 봐온 채권병은 우연히 청풍지라는 말을 듣고 취미로 종이를 만들었다. 그 종이로 메모지를 만들어 약국에 선물했고, 1988년 천연염색을 취미로 하던 고교 교사 정연희와 결혼하면서 업()이 되었다.

청풍지를 찾아 제천으로 터를 옮기며 아내는 눈물보가 터졌다. 남편은 돈도 되지 않는 종이를 만들어 그나마 족족 남에게 선물하고 자랑질을 했다. 2013년 여름날 살림에 보탬 되지 않는 남편에게 정연희가 선언했다. "이제 끝." 다음 날 제천역 광장에서 채권병이 정연희 옷깃을 잡고서 무릎 꿇고 울었다. "마지막 놀이터 한 번 만들게 해주시게." 여기까지가 다음 달 청풍문화재단지 뒤쪽에 한지체험관이 문을 열게 된 내력이다.

 

금월봉과 청풍문화재단지

 

알고 보면 여행이란 흔적을 찾는 길이다. 제천에는 사람들 눈길을 끄는 흔적이 몇 군데 더 있다. 금월봉(錦月峰)을 본다. 1993년 한 시멘트 공장(아시아시멘트라고도 했고 한일시멘트라고도 했다) 굴착기가 시멘트 원료인 점토를 채굴하다가 바위에 부딪혔다. 필요한 점토를 골라골라 파내고 보니 위 사진처럼 장엄한 돌산이 나타났다. 보는 사람 넋을 나가게 하는 웅장한 모습에 이 석회암봉은 그대로 보존됐고 '금성면 월굴리' 이름을 따서 금월봉이라 명명했다. 청풍문화재단지는 어떤가. 1978년 충주댐 건설로 청풍면 주변 61개 마을이 물에 잠겼다. 그 흔적 가운데 문화재급 흔적들을 모아 언덕 위로 옮겼다. 보물 2, 지방문화재 9점을 비롯해 마을 하나 규모가 원형대로 이전됐다. 고택도 있고 고인돌도 있으니 수천 년 남한강변 삶의 흔적을 언덕 위에서 한꺼번에 구경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1993년 시멘트 공장 사람들이 점토를 캐내다가 땅속에서 바위산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바위산에 금월봉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먼지로 사라졌을지도 모를 대장엄(大莊嚴)이 지상에 현현했다. 청풍호반에서 만날 수 있는 수많은 옛 흔적 가운데 하나다. /박종인 기자


 

미륵리사지 돌부처의 침묵과 고산사 석조 나한의 미소

 

그러고 보니 보였다. 옥순대교를 건너면 퇴계 이황이 감탄한 옥순봉이 햇살을 받고, 산중 작은 절 고산사로 오르니 석조 나한 여섯 분이 마음 편하게 웃는다. 월악산 산중에는 마의태자가 만든 거대한 미륵석불이 천년째 수행 중이다. 호숫길을 떠나니 또 다른 흔적들이 그리 보인다. 채굴 완료하고 용도 폐기해도 무방했을 돌산이 저리 장엄하게 서 있고, 아득한 옛날 가족들 옹기종기 모여 살던 동굴은 신비한 공간으로 부활했다. 물에 잠긴 닥나무 숲을 찾아 채병권은 오늘도 종이를 만든다. 모두 그리되었다.

 

[제천 여행수첩]


 

〈볼거리〉 1. 미륵리사지: 마의태자 전설이 있는 절터. 현재 석축을 보수공사 중이라 조금은 어수선하다. 2. 고산사: 깊은 산중에 있는 작은 절. 응진전에 있는 석조 나한을 반드시 만나실 것. 3. 옥순봉: 옥순대교에서 바라보는 전망. 4. 청풍문화재단지: 수몰되는 마을을 통째로 이전한 마을. 청풍면 물태리 산6-20, (043)641-5532. 5. 금월봉: 청풍문화재단지와 남제천IC 사이. 6. 구석기인이 살았던 점말동굴: 마을 입구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산길로 1. 7. 청풍호 모노레일: 비봉산 정상 전망대까지 오르는 모노레일. 왕복 3. 온라인 예약. 8000. tour.jecheon.go.kr

〈맛집〉 1. 금수산송어장가든: 송이간장게장과 송어회, 매운탕. , 게장, 매운탕 코스 25000원부터. 금성면 성내리 52, (043)652-0005 2. 산마루: 약초로 만든 한정식. 잔디밭과 세련된 실내 분위기. 약채한정식 2인분 3만원. 펜션도 겸. 금성면 청풍호로 909, (043)645-9119

〈묵을 곳〉 1. 이에스리조트: 울창한 소나무숲 속에 개성 있는 숙소들 . 비회원도 숙박 가능. 제천은 20평형 154000원부터. 수영장을 제외한 산책로, 찻집, 식당은 비회원에게도 개방. 리조트 자체가 여행 목적지. 통영리조트가 가장 인기 있고 9월에 제주리조트도 오픈한다. 예약 및 회원권 문의는
clubes.co.kr(회원용), (02)508-2329 2.기타 숙소: 제천관광 홈페이지 tour.jecheon.go.kr


-박종인 여행문화 전문기자, 조선일보(16-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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