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경아의 퇴직생활백서]---
[퇴직자에게 박씨를 물어다 주는 제비는 없다]
[새 직장 찾는 퇴직자가 마주칠 뜻밖의 현실]
퇴직자에게 박씨를 물어다 주는 제비는 없다
최근 신종 사기가 급증한다는 뉴스를 보았다. 가상자산에 투자하면 평생 연금을 지급하겠다고 꼬드겨 퇴직자들에게 금전적 손실을 입힌다는 내용이었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직장인 시절에 우연히 접한 얘기 하나로 상당 기간 고통에 시달렸다. 당시에 가까운 지인이 저평가된 부동산이 있다며 추천해 줬는데, 나로서는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유혹이었다. 마침 노후를 고민하고 있어 가진 돈을 몽땅 털고 대출까지 받아 땅을 샀건만 알고 보니 법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그 후 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터라 사기라는 말만 들으면 촉각이 곤두선다.
왜 오랫동안 회사에 몸담았던 퇴직자들은 거짓된 정보에 속는 것일까. 언뜻 따져봐도 계산이 맞지 않는 구조인데 정말 몰라서 꼬임에 넘어가는 걸까. 나는 그 이유가 세 가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주변에 사람이 없다. 퇴직은 사회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어제까지 함께했던 선후배들도, 같이 일했던 업무 파트너들도 퇴직을 기점으로 모두가 떠나간다. 새로운 관계를 만들려고 해도 전과 같지 않은 주머니 사정은 갖가지 계산을 하게 만든다. 찻값은 어찌할까, 먼저 말했으니 내가 내는 게 맞는 걸까. 그럴수록 퇴직자는 점점 외톨이가 되어 간다.
그러다 보니 세상 돌아가는 분위기를 알 턱이 없다. 기껏해야 얻는 자료는 포털 사이트의 기사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추천하는 영상이 전부인데 이게 가짜 뉴스여도 분별해 낼 재간이 없다. 회사로부터 정기적으로 교육을 받지도 못하고, 동료들에게 시시각각 사는 얘기도 듣지 못하니 점차 바보가 되고 만다. 부족한 정보를 토대로 홀로 내린 결정은 실패를 부르기 십상이다.
둘째, 사람을 쉽게 믿는다. 보통의 회사에서는 동료들 간에 속고 속이는 광경은 거의 접할 수 없다. 가끔 의아한 부분이 있더라도 나중에 알고 보면 오해에서 비롯된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상황을 자주 겪다 보면 결국 사람을 신뢰하게 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회사 밖은 다르다. 좋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나 간혹 그렇지 않은 이들도 분명히 있다. 내게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는 목적의 십중팔구는 내 재산일 가능성이 높다. 직장생활이 유일한 사회 이력인 퇴직자로서는 그들의 진의를 파악하기 쉽지 않다. 외로운 자신에게 베푸는 친절이 감사하게 느껴져서 급기야는 상대방을 의지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셋째, 삶이 불안하다. 확실히 퇴직하고 나면 심정적으로 여유가 없어진다. 내가 가진 자산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고정 수입이 사라지는 현실은 퇴직자를 한없이 위축시킨다. 재취업을 하고 싶어도 받아주는 곳이 없고 창업은 망할까 봐 두려워 차마 엄두도 내지 못한다.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갖은 궁리를 다 해보지만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무지 답을 찾을 수가 없다.
그런 마당에 일정한 수익을 보장한다는 누군가의 제안은 더할 나위 없이 반갑기만 하다. 안정적인 노후 대책이라는 말보다 퇴직자들에게 더욱 간절한 단어는 없다. 풍요로운 노후를 약속해 준다면 부담이 되더라도 기회를 잡겠노라고 결심한다. 앞서서 이득을 봤다는 사람까지 보게 되면 설마 했던 의구심이 마침내 강한 확신으로 바뀌게 된다.
수십 년 성실하게 일만 한 퇴직자들이 사기로 피해를 보지 않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두 가지만은 꼭 기억했으면 한다. 먼저 지나치게 좋은 제안은 일단 경계부터 해야 한다는 점이다. 세상에 쉽게 벌 수 있는 돈이란 있을 수 없다. 시장의 흐름을 무시하고 높은 이익을 담보하는 상품이 있다면 소개하는 그가 모조리 사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이 땅은 부자들로 넘쳐 났을 것이다. 제비가 박씨를 물어다 주는 행운은 동화책에서나 있는 일이다.
다음은 돈이 오가는 문제 앞에서는 즉각적인 결론을 피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퇴직자들이 가지는 조급함이 퇴직 후 실패의 주요 원인이듯 투자에서도 성급한 태도는 결과를 그르치게 할 뿐이다. 따라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가족과 친구, 전문가와 상의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혼자만의 생각은 결코 보탬이 되지 않는다. 객관적인 입장을 가진 제삼자의 도움을 받아 냉철한 자세를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적지 않은 퇴직자가 노후 걱정에 무리수를 두다가 그나마 가진 돈까지 잃고 마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한 나의 행동이 의도치 않은 결말을 불러오는 것보다 더한 아픔이 어디 있으랴. 노후 자금을 호시탐탐 노리는 각종 사기에 대한 경각심을 잃지 말고 항상 신중하게 판단하셨으면 좋겠다.
-정경아 작가·전 대기업 임원, 동아일보(24-11-25)-
_____________
새 직장 찾는 퇴직자가 마주칠 뜻밖의 현실
직장인이 회사를 떠난 후 맨 처음 좌절할 때는 언제일까. 아마 대부분이 새로운 일자리를 구할 때가 아닐까 싶다. 신문에서만 읽던 기사가 내 얘기가 되는 순간, 한꺼번에 몰려오는 당혹감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얼마 전 중장년을 위한 일자리 박람회에 다녀왔다. 일에 대한 갈증이 있던 차에 중장년만을 위한 행사라니 출발 전부터 기대가 컸다. 내게 꼭 맞는 자리를 구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찾아갔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차가웠다.
박람회장에서 본 중장년 일자리에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구직활동을 해본 퇴직자라면 누구나 알게 되어도 쉽사리 꺼내지 않는 이야기, 미리 알았더라면 나의 퇴직 준비도 달라졌을 것 같다.
첫째, 퇴직자의 스펙은 중요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퇴직 후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한다. 자격증을 따서 또 다른 도전을 해볼까,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해 강의를 해볼까, 끝없이 고민한다. 하지만 회사 밖에 나와 보니 자격증과 학위를 활용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나 역시 남들과 비교하여 부족하지 않을 만큼 퇴직 준비를 했지만, 그 덕을 보지는 못했다. 대학원을 포함해 스무 곳 가까운 기관에서 받은 교육과 열 가지 넘는 자격증은 무용지물이었다. 그저 불안한 마음만 달래주었을 뿐이다.
실제로 박람회장에서 인터뷰하는 중에 학위나 민간자격증 취득 여부를 질문하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내가 심혈을 기울였던 퇴직 준비들이 사실상 일자리를 구하는 상황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를 드러내기 위해 짬짬이 어필하려고 해도 애당초 말할 틈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돌봄이나 건물관리 등에서 일부 자격증을 원하는 기업이 있었지만 평범한 퇴직자와 직장인들이 수월하게 접근할 만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둘째, 퇴직한 전문가는 전문가가 아니었다. 대다수 퇴직자가 특정 분야만큼은 스스로를 최고의 전문가라고 여긴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갈고닦은 실력은 웬만해선 뒤지지 않을 거로 확신한다. 안타깝게도 세상은 퇴직자에게 그런 역량을 바라지 않았다. 퇴직 후 재취업 면접에 숱하게 응시했을 당시에도 대부분의 기업들은 내가 가진 업무적 능력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전문가를 과연 전문가라고 할 수 있을까. 중장년 취업에 퇴직한 전문가는 필요 없었다.
일자리 박람회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그곳에서 상담하는 사이에 내 강점을 묻는 회사는 없었다. 대표적인 곳이 보험회사였다. 안내를 전담하는 직원은 정년 없이 고소득이 가능하다며 열심히 나에게 해볼 것을 권했다. 소개하는 내용이 사실이라면 입사 절차가 까다로울 법한데 상담사는 별다른 전문성을 요구하지 않았다. 내가 그 직종에서 일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조건은 지방권 영업에 사용할 차량과 운전면허 그리고 관련 지식이 전부였다.
셋째, 퇴직자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 않았다. 직장인 시절에 나이는 경력을 드러내는 나이테와 같았다. 연차가 쌓일수록 실력이 늘어났고 보상도 커졌다. 그렇지만 회사 밖에서는 나이를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달랐다. 퇴직자의 나이는 무조건 적을수록 좋았다. 투박한 태도는 가다듬고 모자란 자질은 개발하면 된다지만 이미 들어버린 나이는 어찌하랴. 나이야말로 퇴직자들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결정적 장애물이었다.
상담을 받아보았던 박람회 참여 기업들도 가장 먼저 내 나이부터 물었다. 답변하면 그제서야 세부 사항을 설명해 주었다. 가까스로 기준을 통과했지만 듣는 내내 머리가 복잡했다. 내가 설 곳이 점차 줄어드는 것 같아 착잡한 심경이었다. 어느 부스에서는 내 뒤로 순번을 기다리던 머리 희끗한 사람이 나이 얘기가 나오자 슬그머니 돌아 나가기도 했다. 아마도 나이에서 지원 요건이 안 된다는 걸 알고 급하게 발걸음을 옮겼던 것 같다. 이처럼 퇴직자의 의지는 나이 앞에서 무력했다.
한마디로 동상이몽이었다. 퇴직자와 퇴직자를 채용하는 기업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존재했다. 이를 증명하듯 그동안 만났던 퇴직자들은 하나같이 얘기했다. 본인이 한때 대단한 업적을 올렸고 경험과 학식이 뛰어나다고 말이다. 반대로 내가 직접 대화를 나눠본 기업들은 입장이 달랐다. 기업들은 구직자가 지난날 얼마나 화려한 이력이 있었는지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대기업 임원이든 고위 공무원이든 당장 택시를 몰 수 있는지, 어르신 케어를 할 수 있는지만을 확인하려 했다. 이런 서로 다른 시각차가 퇴직자들의 구직 현주소였다.
그럼에도 퇴직 후 신속하게 두 번째 직업을 찾아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필시 이러한 현실을 빠르게 받아들인 사람들이 아닐까 한다. 이제부터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시작해보면 어떨까. 찬란했던 영광에 취해 사는 퇴직자에게 인생 2막의 기회는 오지 않는다. 지금 이 시점에도 더 나은 삶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든 퇴직자를 응원드린다.
-정경아 작가·전 대기업 임원, 동아일보(24-08-12)-
========================
'[세상돌아가는 이야기.. ] > [經濟-家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업의 마법] [구광모회장, 4세 경영시대 개막] .... (0) | 2024.11.28 |
---|---|
[獨-美-日 자동차 강국들의 구조조정 도미노] .... (0) | 2024.11.27 |
[노노 상속 급증… 부도 늙는다] [‘노인대국’ 일본의 ‘간병 대란’] .... (8) | 2024.11.21 |
[집값 급등 촉발시킨 국토부의 "부동산 안정" 자화자찬] .... (0) | 2024.11.20 |
[6개월 되도록 연금 논의기구도 못 만든 국회] .... (3) | 2024.1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