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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에 밀려나는 어문학과들] [‘실시간 통역’ 스마트폰] ....

뚝섬 2024. 2. 26. 06:04

[AI에 밀려나는 어문학과들]

[‘실시간 통역’ 스마트폰] 
[대충 말해도 영어로 술술.. ]

 

 

 

AI에 밀려나는 어문학과들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에 성공한 비결로 어학을 통한 선진 문명 학습이 꼽힌다. 도쿠가와 막부 때부터 네덜란드어를 배워 앞선 의학과 선박 제조 기술을 익혔다. 19세기 영국과 미국 전함의 위용을 잇달아 목격한 뒤엔 영어로 방향을 틀었다. 막부는 네덜란드어만 알던 통역관들에게 목숨 걸고 영어를 배우라고 명했다. 뒤늦게 근대화에 나선 우리도 다르지 않았다. 구한말 외교 고문 묄렌도르프는 ‘조선이 개화하려면 외국어를 배워야 한다’고 고종에게 권해 1898년 한성에 독일어학교를 세웠다.

 

▶신생 대한민국의 외국어 학습 열망도 뜨거웠다. 8·15 해방 직후 교육과정에 영어·독어·불어·중국어가 포함됐다. 1969년엔 스페인어가, 1973년엔 일본어가 추가됐다. 1960~70년대 중고생 사이엔 “단어를 외우고 나면 사전을 찢어 씹어 먹었다”는 외국어 공부 무용담이 돌았다. “영어 발음 잘해야 한다”며 아이들 혀 밑 설소대를 절개하는 황당한 수술이 한때 유행했던 것도 외국어 학습 열풍이 빚은 그늘이다.

 

▶언젠가부터 외국어 열풍이 수그러들고 있다. 1980년대 후반 제2외국어가 대입 필수 과목에서 제외되더니 지금은 ‘제2외국어는 서울대 입학용’이란 말까지 생겨났다. 1980년대까지 ‘학문의 언어’와 ‘외교 언어’로 인기 있던 독어와 불어가 먼저 퇴조했다. 두 언어를 밀어내고 1990년대 인기를 누렸던 중국어와 일본어도 요즘엔 동양어문학부로 통폐합되거나 아예 없어지고 있다.

 

▶교육부가 2013~2022년 4년제 대학의 학과 변동 추이를 조사했더니 인문계 학과 정원이 어문계 중심으로 20%나 감소했다. 이 기간 중국어과 36개, 일어과 27개가 사라지거나 통폐합됐다. 대학마다 어문 계열 학과의 폐과나 통폐합을 추진하면서 해당 학과의 교수와 학생이 대학 당국과 심각한 갈등을 빚는 일이 반복된다. 대학은 대학대로 사회적 수요가 줄어들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SF 소설가 듀나가 2016년 발표한 단편 ‘추억충’은 인공지능 시대에 외국어 학습 미래를 내다본 작품이다. 소설에서 번역가인 윤정은 20년 전만 해도 모든 작업을 직접 했지만 지금은 70%를 기계에 맡긴다. 그녀는 생각한다. ‘앞으로 20년이 더 지나면 이 직업은 존재하기는 할까.’ 소설 속 미래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휴대전화에 관련 앱만 깔면 서로의 언어를 몰라도 대화가 가능해졌다. 실시간 동시통역이 가능한 AI 스마트폰까지 나왔다. 덮쳐 오는 거대한 AI의 쓰나미 앞에서 어문 계열 학과가 존폐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4-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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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통역’ 스마트폰

 

몇 년 전 스페인의 호텔에서 웃기는 장면을 봤다. 생수에 영어, 불어, 한국어로 안내문을 붙여 놨는데, ‘아직도 물’이라고 쓰여 있는 게 아닌가. 탄산이 없는 물이란 뜻의 영어 ‘still water’를 구글 번역기가 오역한 탓이었다. 지난달 말 포르투갈 리스본에선 아제르바이잔 출신 관광객이 석류 음료를 주문하려고 러시아어로 석류(granat)를 입력했더니 포르투갈어 ‘granada’로 출력되었다. 그대로 냅킨에 적어 웨이터에게 건넸더니 무장 경찰이 들이닥쳐 수갑을 채웠다. Granada가 포르투갈 말로 ‘수류탄’이란 뜻이었기 때문이다.


▶실시간 자동 통역기는 ‘바벨탑의 저주’로 언어 장벽을 가진 인류의 숙원 중 하나다. ‘스타트렉’ 시리즈에선 지휘봉 모양 만능 통역기가 나오고, ‘설국 열차’에선 한국인 주인공이 휴대용 통역기를 통해 외국인과 한국말로 대화한다. SF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는 동시 통역 생물인 바벨 피시가 등장한다. 귀에 바벨 피시를 넣으면 어떤 외계인 언어도 이해할 수 있다는 상상이었다. 하지만 실시간 통역기의 기술 장벽은 화상 전화나 레이저 총보다 휠씬 높았다.


2000년대 초 삼성경제연구소는 국가 프로젝트로 ‘자동 통역기’를 개발하자고 제안했다. 영어를 배우는 데 드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삼성종합기술원이 유선전화에서 한국어로 말하면 일본어로 통역해 들려주는 한·일 자동 통역 서비스를 선보였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앱 기반의 자동 통역 서비스를 개발, 인천공항 등에서 시연했지만 서비스 대중화엔 이르진 못했다.


인공지능(AI) 기술이 해결사로 등장했다. 인간 뇌를 본뜬 인공 신경망이 통역·번역을 기계 학습해 속도와 정확도를 획기적으로 높이고 있다. 구글 어시스턴트, 네이버 파파고를 활용하면 동시 통역 기능을 맛볼 수 있다. 하지만 구글 계정으로 로그인해야 하고 클라우드 기반이라 통역에 시간 지연 문제가 생기는 점, 대화 내용 보안 문제 등이 약점으로 지적돼 왔다.


▶삼성전자가 내년 초 출시할 갤럭시 스마트폰 신제품에 생성형 인공지능(AI)에 기반한 ‘실시간 통역 기능’을 탑재한다고 발표했다. 클라우드가 아니라 스마트폰에 내장된 AI 반도체가 통역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정보 처리 속도가 빠르고 대화 내용이 외부로 샐 염려도 없다는 것이다. 해외 IT 매체들이 “갤럭시 AI를 기대하시라”며 앞다퉈 보도하고 있다. 실시간 통역기의 게임 체인저가 됐으면 좋겠다.


-김홍수 논설위원, 조선일보(23-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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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말해도 영어로 술술..

인공지능이 문장 정확히 나누고 생략된 단어까지 유추해서 통역 문장 자동번역과는 차원이 달라…
연말까지 완성도 80% 넘을 예정 금융상품 팔고 법률·의료상담 등 AI 상담원도 등장하게 될 전망

"이 문장에서는 주어를 빼먹고 번역을 하네요. 대명사가 반복되니까 주어를 찾기 어려운 것 같은데요."

지난 17일 대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지능정보연구본부. 이윤근 음성지능 연구그룹장과 김영길 언어지능 연구그룹장이 연구원들과 노트북을 가운데 두고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노트북 화면에는 캐나다 과학자 라라 보이드의 지식 강연 '테드(TED)' 동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동영상이 나오는 창 옆에는 보이드의 말을 실시간으로 인식해 영어 자막으로 표현하는 창과, 이를 번역해 한국어로 보여주는 창이 띄워져 있었다. ETRI가 지난해부터 개발 중인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 동시 통역 프로그램의 시험용 버전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김현기 책임연구원·김영길 그룹장·이윤근 그룹장(왼쪽부터)이 인공지능 동시통역기의 시험 버전을 시연하고 있다. ETRI는 강연이나 대화 전체를 실시간으로 통역해주는 이 시스템을 올해 내에 출시할 계획이다. /신현종 기자

김영길 그룹장은 "구글·네이버가 AI를 이용해 자동 번역 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단어·문장이 아닌 대화나 강연 전체를 한국어로 실시간 통역하는 AI는 이 프로그램이 처음"이라며 "기술 보완을 거쳐 올해 안에 실생활에 사용할 수 있는 한국어·영어·중국어 AI 동시통역기를 공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어 기반 AI 동시통역기 올해 첫선

한국 최대의 정보기술(IT) 정부 연구소인 ETRI가 AI 동시통역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네이버와 구글의 문장 자동 번역도 웬만한 사람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동시통역은 기술의 차원이 다르다는 것. 김영길 그룹장은 "문장 번역은 번역된 문장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기만 해도 정확도가 크게 높아진다"면서 "반면 사람의 대화나 강연은 말이 어디에서 끊어지는지 파악하기 어렵고 비문(非文)도 많아 AI가 더 똑똑해야 한다"고 말했다. AI가 문장을 정확한 단위로 나눌 수 있어야 하고, 생략된 단어까지 유추해야 한다는 것이다. ETRI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음성 인식, 문장 분류, 자동 번역, 문장 재구성, 음성 합성 등 다양한 기술을 조합했다.

ETRI는 AI 동시통역기를 3개월째 현장에서 시험하면서 보완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이달 초에는 외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대전 한밭대 강의에 활용하기도 했다. 교수가 한국어로 강의를 진행하면 대형 스크린과 학생들의 태블릿PC에 영어와 중국어로 바꾼 자막이 3~5초 정도 간격을 두고 표시되는 식이다. 태블릿PC에 이어폰을 꽂으면 강의가 외국 학생들의 모국어로 바뀌어 들린다. 김영길 그룹장은 "동시통역의 정확도는 아직 떨어지지만 연말까지는 완성도가 80%는 넘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AI 동시통역은 ETRI가 한국이 가장 잘할 수 있는 AI 분야를 고민한 끝에 얻어낸 결론이다. 한국어 데이터는 한국에 가장 많고 한국어의 미묘한 특징을 잡아내 프로그램을 최적화하는 것도 한국 연구자들이 가장 잘할 수 있다는 것. ETRI는 이미 1980년대 중반부터 자동 번역 인공지능을 연구해 상당한 노하우도 쌓여 있다. ETRI는 AI 동시통역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 올 초 각 부서에 흩어져 있던 AI 연구자 50명을 모두 지능정보연구본부에 모았다. 이윤근 그룹장은 "음성 인식과 한국어를 중심으로 한 AI 동시통역에서는 구글·마이크로소프트·IBM 같은 글로벌 기업에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서 "콜센터용 AI를 통해 이미 경쟁력도 인정받았다"고 말했다. 금융사·쇼핑몰 등에서는 콜센터 관리를 위해 AI를 사용한다. 녹음되는 고객 상담 내역이나 불만 사항을 AI가 인식해 문서로 변환하고 분류·분석하는 식이다. 이윤근 그룹장은 "2014년까지만 해도 베린트·뉘앙스 등 해외 기업들이 콜센터 AI 시장을 장악했지만 현재는 모두 한국 사업을 접었다"면서 "ETRI가 한국어에 특화된 프로그램을 개발해 공개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알렉사·시리 뛰어넘겠다"

김영길 그룹장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아마존의 AI '알렉사'나 애플의 '시리' 등은 쇼핑이나 일정 관리 등 정해진 형태의 문답에만 특화된 반면 AI 동시통역 기술은 이런 한계도 뛰어넘는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 장학 퀴즈에 출연하며 유명해진 퀴즈 AI 엑소브레인과 결합하면 시너지가 클 것이라는 예상이다.

김현기 책임연구원은 "엑소브레인과 동시통역 기술을 결합하면 사람의 불만이나 요구를 듣고 거기에 맞춰 대응하는 AI 상담원을 만들 수 있다"며 "또 지금은 PC 기반으로 작동하지만 연말쯤이면 스마트폰용 버전도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박건형 기자, 조선일보(17-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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