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經濟-家計]

[온 국민 노후를 담보로 한 불장난 ‘연금 관치’] ....

뚝섬 2023. 2. 13. 09:14

[온 국민 노후를 담보로 한 불장난 ‘연금 관치’]

[정부와 기업, 관치중독에 빠졌나]

[新관치 논란 어떻게 볼 것인가] 

[대통령이 펀드 수금하는 나라] 

[‘文 펀드매니저 데뷔’] 

[한 번도 경험 못 해본 펀드]

 

 

 

온 국민 노후를 담보로 한 불장난 ‘연금 관치’

 

[천광암 칼럼]

민영화 20년 넘도록 되풀이돼온 KT·포스코 CEO 흑역사
이젠 국민연금까지 동원하나
30조 적자 한전 보면 ‘연금관치’ 미래 보여

 

공기업이던 포스코와 KT가 민영화된 것은 각각 2000년과 2002년의 일이다. 20년도 넘었다. 포스코 최정우 현 회장과 KT 구현모 현 대표는 모두 민영화 이후 5번째 최고경영자(CEO)다. 전임자들은 대부분 끝이 좋지 않았다. 검찰의 집중적인 수사를 받고 ‘타의로’ 자리를 내놨거나, 수사가 저인망처럼 조여 오자 자진사퇴 형식으로 화(禍)를 피했다. 두 번째 임기까지 채운 황창규 전 KT 회장도 불기소 처분을 받기는 했지만 수사의 칼날을 피하지는 못했다.

이전 정권에서 임명한 CEO는 일단 ‘몰아내고 본다’는 것이 공식처럼 되풀이되다 보니 벌어졌던 일이다. 여기에는 보수정권이든 진보정권이든 예외가 없었다. 권력형 비리가 만연했던 5, 6공 시절을 배경으로 한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난 니가 깡팬지 아닌지는 관심이 없어. 넌 내가 깡패라고 하면 그냥 깡패야.” 영화 속 검사가 극 중 피의자에게 하는 말이다. 역대 정권이 이른바 ‘국민 기업’인 포스코와 KT를 대해온 방식이 딱 이런 식이었다.

이는 ‘민간 주도 경제’를 기치로 내건 윤석열 정부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국민연금이 전면에 나섰다는 점이다. 최근 국민연금의 공개적인 압박에 KT 이사회는 CEO 선임과 관련해 지금까지 밟아온 절차를 백지화하고 새롭게 공개경쟁 방식의 공모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국민연금이 KT 1대 주주의 자격으로 CEO 선임에 대한 의사를 밝힐 수는 있다. 다만 CEO 후보자의 경영 성과와 자격, 절차적 공정성에 대해 객관적이고 투명한 판단 근거는 제시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드는 의문이다.

 

먼저 경영 성과. 지난해 KT는 1998년 상장 후 처음으로 매출 25조 원을 돌파했다. 영업이익으로는 1조6901억 원을 벌었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은 526억9000만 원을 현금으로 배당받았다. 둘째 구 대표의 자격과 관련해 ‘국회의원 쪼개기 후원금’ 사건 간여 정도다. 구 대표는 이로 인해 벌금형 약식명령을 받았으나 이에 불복해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KT 규정상 금고 미만은 CEO 결격 사유가 아니다. 그래서인지 국민연금은 이런 것들보다는 주로 CEO 선임 절차의 공정성을 문제로 삼고 있는데, 그마저도 구체적인 설명이 부족하다.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정치권력이나 정부가 배후에 있는 ‘연금 관치’ 가능성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과거 정부투자기업 내지는 공기업이었다가 민영화되면서 소유가 분산된 기업들은 ‘스튜어드십’이 작동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흘 뒤 열린 국민의힘 비상대책회의에서는 포스코, KT 등을 콕 집는 발언이 나왔다. ‘관치’가 아니라고 굳이 부인할 생각도 없어 보인다. 30일 열린 세미나에서 한 여당 의원은 “단기적으로 ‘관치’라는 비판을 받더라도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해 완전 민영화된 우리금융의 경우는 국민연금 대신 금융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이 나서서 총대를 멘 경우지만, ‘관치 부활’이라는 맥락에서 무관치 않아 보인다. 전임 CEO의 3연임을 저지하고, 만들어진 빈자리를 꿰찬 것은 ‘모피아 적통’에 해당하는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이었다. 우리금융 민영화는 뭘 위한 민영화였나.

2010년 영국에서 시작된 ‘스튜어드십 코드’는 남의 돈을 맡아 관리하는 금융기관들이 마땅히 지켜야 할 규칙을 정리한 것이다. 핵심은 충직한 집사처럼 주인의 이익을 배신하지 않는 것이다. 무작정 남의 것을 베낄 일이 아니다. 우리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은 전 국민의 소중한 노후자금을 지키는 데 모든 코드가 맞춰져야 한다. 관치나 정치권력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립성을 갖추는 것이 제1번 코드가 돼야 한다. 과거 한국 경제를 국가부도의 수렁으로까지 몰아넣었던 ‘관치의 망령’을 무엇보다 경계해야 한다.

국민연금이 관치에 동원된 미래’를 상상해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탈원전이나 전기요금 포퓰리즘 등 정부 정책에 발목이 잡혀 작년 한 해 동안에만 30조 원이 넘는 적자를 낸 한전의 ‘꼴’을 보면 된다. 우선은 소유 분산 기업이 대상이라고 하지만, 연금 관치의 물꼬가 일단 트이면 대상이 확대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번 정권이 선을 넘지 않는다고 해도, 다음 정권까지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다. 윤석열 정부가 ‘연금 관치’의 막을 열어 국민연금의 고갈을 더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천광암 논설주간, 동아일보(23-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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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기업, 관치중독에 빠졌나

 

소유·경영 분리된 ·유럽선 행동주의 투자자가 CEO 견제
정부가 해결사 역할 반복하면 시장은 문제해결능력 잃어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주인 없는 기업’ 발언으로 이슈가 된 소유 분산 기업의 지배구조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자본주의와 기업 역사가 오래된 미국·유럽에서는 오히려 상장 기업 중에서주인 있는 기업 찾기가 어렵다. 창업 후 여러 세대를 거치며 대주주는 사라지고 전문경영인이 경영을 맡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1월 30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년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윤 대통령은 '주인이 없는, 소유가 완전히 분산된 기업들'과 관련, "모럴해저드가 일어날 수 있는 경우에는 그 절차와 방식에 있어 공정하고 투명하게 해줘야 된다는 점에서 함께 고민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제공/뉴스1

 

기자가 뉴욕 특파원이던 2014년 미국 전자상거래 업계 2위인 이베이의 전문경영인 존 도나호 회장(현 나이키 CEO)과 ‘행동주의 투자자(activist investor)’ 칼 아이컨의 대결이 화제였다. 아이컨은 이베이가 2002년 인수한 온라인 결제 서비스 업체 페이팔을 분할하라고 요구했다.

 

페이팔은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이베이와 경쟁 관계인 다른 전자상거래 업체들이 이베이를 배 불려주는 페이팔 이용을 꺼린다는 것이다. 이베이도 페이팔의 급성장에 안주하는 바람에 본업인 전자상거래에서 1위인 아마존과 격차가 벌어지고 있었다.

 

도나호 회장은 아이컨에게 기업 사냥꾼이란 낙인을 찍고, “이베이의 장기 성장을 위해선 페이팔과의 시너지가 중요하다”고 맞섰다. 하지만 소액 주주들의 생각은 달랐다. “페이팔이 이베이와 남남이 되면 더 많은 전자상거래 업체들을 고객으로 유치해 회사를 키울 수 있다”는 아이컨의 주장에 동의한 것이다.

 

결국 9개월간의 분쟁 끝에 도나호 회장은 백기를 들고 2선 퇴진했고, 페이팔은 이베이에서 분리됐다. 분할 상장 첫날 이베이 시가총액은 347억달러였고, 페이팔은 500억달러였다. 새우(이베이)가 고래(페이팔)를 품고 있었던 셈이었다. 지금은 페이팔 시총이 949억달러로 이베이(272억달러)의 3.5배가 됐다.

 

소유 분산 기업에서는 전문경영인이 잘못해도 주주들이 견제하기 어렵다. 경영에 대해 모를뿐더러 응집력도 없기 때문이다. 이럴 나서는 행동주의 투자자다. 이들은 일정 지분을 취득해 주주 자격을 얻은 뒤 이사진이나 CEO 교체, 기업 분할이나 합병 등을 요구한다.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소액 주주들을 결집해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로 승부한다.

 

행동주의는 과거 경제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자금난에 빠진 기업을 헐값에 인수해 비싼 값에 파는 수법으로 벌처(Vulture·대머리 독수리) 펀드라는 악명을 얻었다. 하지만 경제 위기가 잦아든 뒤에는 기업 사냥보다 기업 실적 개선을 요구하는 쪽으로 전략을 바꿨다. 홀대받던 소액 주주를 대신해 경영진을 견제한다는 점에서 영국 이코노미스트지(誌)는 “행동주의 투자자는 상장 기업에 ‘뜻밖의 구원자(unlikely saviour)’”라고 평했다.

 

행동주의가 CEO 견제하는 선진국들과 달리 국내에선 정부가 역할을 맡아왔다. 작년 말과 올해 신한금융과 우리금융 회장이 연임을 포기하는 과정에서 금융 당국이 상당한 역할을 했고, 다음 있을 KT 회장 선출 주주총회에서는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지기로 했다.

 

정부 개입은 단기적으로 효과가 확실하다는 장점만큼이나 오랜 후유증을 남긴다. 무엇보다 시장이 관치(官治) 중독돼 문제를 자체 해결할 능력을 잃는다. 초등생 자녀의 숙제를 부모가 대신해 주면 당장 학교에서 혼나지는 않겠지만, 중장기적으로 자녀의 실력이 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고(故) 게리 베커 시카고대 교수는 “정부 개입은 시장의 실패가 정부 대책으로 극복되고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만든다”고 했다. 정부 대책은 미봉책일 뿐이고 근본적으론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시장의 자정 능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부가 깊이 새겼으면 한다.

 

-나지홍 기자, 조선일보(23-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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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관치 논란 어떻게 볼 것인가

 

[朝鮮칼럼 The Column]

 

한때 6%를 상회할 정도로 경쟁적으로 치솟던 은행권의 수신 금리가 금융 당국의 제동으로 최근 5% 미만으로 주저앉자 신(新)관치(官治) 논란이 일고 있다. 금융 당국이 수신 금리 인하 압박에 나선 배경에는 수신 금리와 연동된 여신 금리 인상을 억제해 가계의 과도한 이자 부담을 경감해야 한다는 점과 시중 자금이 은행 예금 창구에 몰리는 쏠림 현상으로 유동성 경색이 더 악화될지 모른다는 우려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은행의 여수신 금리는 자연스럽게 치솟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레고발 자금 경색이 발발하자 이에 대응해 금융당국이 팔을 걷고 나섰다. 부동산 ABCP(자산유동화 기업어음) 시장에서 발화된 불길이 번져 회사채 시장까지 경색 현상을 보이자 당국은 회사채 공급물량을 조절하기 위해 은행채 발행을 억제하도록 압박했다. 이에 대응해 은행이 수신 금리를 높여 유동성 확보에 나서자 은행권으로 몰리는 자금쏠림 현상을 억제하기 위해 또 다시 은행을 압박해 수신 금리를 낮춘 것이다. 이 부분에서 신관치 논란이 불거졌다.

 

이러한 신관치 논란에 대해 두 가지 측면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관치는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정부의 모든 경제 관련 정책은 관치라고 볼 수 있다. 과거 김석동 장관이 관치에 대해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라고 말했다가 구설수에 휘말린 적이 있는데 맥락을 보면 그의 진의는 위와 같다. 이런 광의의 의미와 달리 부정적 의미에서 언급되는 협의의 관치는 비경제적 의도로 정책자금의 분배나 민간 부문의 인사에 개입하는 경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현재 금융당국의 개입은 협의의 부정적 관치라기 보다는 광의의 관치, 즉 정책이라고 보는게 타당하다.

 

다만 여기에 두 가지 생각할 점이 있다. 관이 치하기 위해서는 시장 실패로 인해 시장이 파행적으로 운영될 때 그리고 정부가 개입함으로써 상황을 개선할 수 있을 때로 한정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시스템 위험 관리 및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목적을 가진 금융감독원이 유동성 경색 국면에서 뒷짐지고 있다면 오히려 직무유기라고 볼 수 있다. 다만 금리라는 ‘가격변수’를 직접 통제하는 방식이 과연 효율적이냐 하는데는 의문이 있다. 유동성 경색은 궁극적으로 유동성 부족에 기인한 만큼 유동성을 투입해 풀어야 한다. 물론 인플레이션과 사투를 벌이는 상황에서 한편으로 유동성을 푼다는 것이 모순된 정책으로 보이지만 저수지 문을 닫아도 특정 지류가 말라 물고기가 고사할 정도라면 일단 급한 경우 물을 대줘야 한다. 실제 금융위원회가 50조+알파, 한은이 6조 규모의 증권사 RP(환매조건부 채권) 매입 프로그램을 통해 급한 불은 잡아나가고 있다. 이와 함께 미시정책이 병용되어야 하는데 은행의 예대율 규제 완화나 보험사 유동성 규제 완화 등 역경기순환 규제(countercyclical regulation) 정책이 대표적이며 이미 금융위원회가 이에 착수한 상태다.

 

수신금리 제약은 금융감독원이 여기에 부가적으로 시행한 일종의 창구지도로 볼 수 있는데 그 효과에는 의문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은행권에 돈이 쏠리는 현상은 단순히 수신금리가 높아서가 아니다. 신용위험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진 것이 일차 요인이다. 결국 회사채 시장이 안정되려면 신용위험을 너무 과도하게 인식했다는 인식이 변화하거나 회사채의 신용스프레드(회사채와 국채간 금리 차이)가 충분히 높아 부동자금이 몰리면서 해소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수신 금리 인하로 부동 자금이 은행권에서 회사채 시장으로 이동할지는 의문이 제기될 수 밖에 없다.

 

이와 함께 더 큰 문제는 금융당국이 은행이 수신금리를 올린 것을 두고 예대마진을 탐해 이자 장사나 하는 스크루지 영감식으로 매도하는 것이다. 은행도 상법상 주주가 있는 엄연한 주식회사다. 다만 은행이 가진 공공적 기능과 시스템 위험을 야기할 수 있는 특수성으로 특별히 규제를 하는 대상일 뿐이다. 그리고 예대마진은 만기가 짧고 위험성이 낮은 수신을 만기가 길고 위험성이 높은 여신으로 유동성을 전환하는데 드는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 은행은 경제의 심장으로 혈류를 관장하며 수신이 정맥이라면 여신은 동맥이다. 굳이 금융당국이 은행에 수신금리 인하 및 예대마진을 낮출 것을 권고한다면 유동성 상황이 급박하니 은행이 가진 공공적 특성에 비추어 ‘미안하지만’ 예대마진을 축소하도록 양보를 구한다가 올바른 태도지 이슬람의 샤리아 율법처럼 은행권을 매도하는 식으로 압박하는 것은 곤란하다. 금융당국이 신관치논란에서 자유롭고자 한다면 이러한 인식의 변화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조선일보(22-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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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펀드 수금하는 나라

 

돈이 아니라 대통령의 本分에 관한 문제다
수금에 뛰어든 대통령이 과연 정상인가

 

청와대에서 지난 3일 열린 한국판 뉴딜 전략 회의는 ‘대통령은 대체 무엇하는 존재인가’란 기본적 질문을 국민에게 던졌다. 청와대는 그날 회의에 국내 금융권 대표 40여 명을 불렀다. 대통령은 거대 여당 대표, 경제부총리, 금융위원장, 청와대 비서진을 옆에 두고 “뉴딜 성공을 위해선 금융의 적극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했다. 홍콩 증권사는 그 모습이 신기했는지 “한국 대통령이 펀드매니저로 나섰다”는 보고서를 냈다. 엄밀히 말하면 비유가 잘못됐다. 대통령은 펀드 자금을 굴리는 펀드매니저가 아니라 펀드 자금을 모으는 관제 브로커 혹은 계주(契主)로 나선 것이다.

 

그날 그 자리엔 참석해도 문제없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권력이든 조폭이든 시장에선 힘이 개입된 세일즈를 강매(强賣)라고 한다. 대통령을 위시한 경제의 권부(權府)가 모두 참여함으로써 그 자리는 회의가 아니라 강매 현장이 됐다. 불려 나간 금융계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정상적인 금융사만 참석했다면 직접이든 간접이든 그들 중 투자에 개입할 수 있는 대표가 있을 수 없다. 권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금융사 대표의 투자 개입은 허용 자체가 은행의 거대 리스크로 작용한다. 사채 회사가 아닌 웬만한 금융회사라면 대표와 분리된 전문 위원회를 따로 두고 투자를 결정한다. 관치 금융의 폐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정착된 금융계의 원칙이다. 청와대만 모를 뿐이다. 대통령의 ‘적극적 뒷받침’ 발언은 그들에게 직권에도 없는 개입을 요구한 것과 다름없다. 그들 중 네 금융지주회사는 채용 비리 혐의로 대표가 문 정권의 사법 심판대에 오른 경험이 있다.

 

청와대 회의 직후 언론은 손실이 날 경우 결국 세금으로 원금을 보전하는 펀드의 설계 방식을 문제 삼았다. 사실 이 펀드는 국가 재정을 지렛대 삼아 거대 민간 자금을 끌어모으는 전대미문의 특혜 펀드이자 투자의 자기 책임 원칙을 허물어 금융시장을 교란하는 괴물 펀드다. 국민 세금을 담보로 민간의 돈을 꿔서 창출해 내는 정권 펀드와 다름없다. 이전 정권도 관제 펀드를 유도한 일이 있다. 하지만 세금을 담보로 원금을 보장하지 않았다. ‘돈 놓고 돈 먹기’지 이게 무슨 투자 상품인가. 손익에 상관없이 대한민국 금융시장에 이런 펀드가 등장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더 큰 문제는 대통령의 본분(本分)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펀드 수금에 뛰어드는 모습은 과연 정상인가. 과거에도 나라의 최고 책임자가 이례적으로 수금에 직접 뛰어든 적이 있다. 대한제국 시절 고종이다. 나라가 거덜 나고 있을 때 고종은 황실 기능을 역대 최대 규모로 키웠다. 요즘 청와대 비서실에 해당하는 궁내부가 돈도 직접 찍고 홍삼도 직접 팔고 세금까지 직접 거뒀다. 해외 투자자도 직접 찾았다. 그 돈으로 탄광도 직접 개발하고 철도도 직접 깔았다. ‘도통(道統)과 치통(治統)을 겸비한 초월적 성인(聖人) 군주’라는 간판을 내세워 황제가 시장의 말단까지 지배하려 했지만 사실은 저물어가는 왕조의 열등감과 초조감이 만들어낸 허상의 권력에 불과했다. 결과는 한국 근대사가 보여준 그대로다.

 

군주가 직접 나서면 당연히 일반 백성을 상대로 한 무명 잡세까지 더 잘 걷힌다. 가렴주구(苛斂誅求)를 하는 데 황제 권력만큼 강력한 배경이 또 있을까. 대통령이 직접 나서면 세금은 물론 펀드 수금도 더 잘된다. 그럼에도 역대 군주나 대통령이 그런 일을 꺼린 것은 그것이 그들의 본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옛 사가(史家)들은 군주의 본분을 “영웅을 발탁하는 것과 민심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고 했고, 군주가 구구한 일에 나설 때 “도리의 본말(本末)을 어둡게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영웅’을 ‘인재’로 바꾸면 현대의 대통령만이 아니라 평범한 중소기업 사장에게도 적용되는 직분의 정의일 것이다.

 

문 정권이 큰 정부를 지향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철학이라니까. 그런데 5년짜리 정권의 철학을 실현하기 위해 빚 400조원을 국민에게 물려주고 그것도 모자라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좀 더 안정적인 수익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며 곗돈 모으듯 펀드 수금에 나섰다. 이것은 큰 정부, 작은 정부의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과 정부의 역할을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몰고 가고 있다. 문 대통령도 고종처럼 자신을 ‘도통과 치통을 겸비한 초월적 성인 군주’로 여기기 시작한 것일까. “찍으면 무조건 대박 난다”는 족집게 도사의 경지까지 도달했다고 여기는 것일까. 내 눈엔 재정을 거덜 낸 절대 권력이 국민의 호주머니로 눈을 돌리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선우정 부국장, 조선일보(2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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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文 펀드매니저 데뷔’

 

홍콩계 증권사 CLSA가 ‘문재인 대통령의 펀드 매니저 데뷔’라는 제목의 한국 관련 투자 전략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는 “세금으로 손실을 보전하는 펀드와 어떻게 경쟁할 수 있겠느냐. 펀드 매니저들이여, 조심하라”고 썼다. “당신의 대통령이 당신의 경쟁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외국 정부와의 마찰을 피하려 하는 외국계 투자은행으로선 이례적 행보다. 그만큼 뉴딜 펀드가 비상식적인 금융 상품이란 얘기다.

 

▶뉴딜 펀드는 문 정부가 포스트 코로나 성장 전략으로 채택한 한국판 뉴딜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고안된 관제(官製) 펀드다. 민간 투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원금 보장을 내세우려다 법 위반 논란이 일자, 손실을 보면 정부가 우선 떠안도록 설계됐다. 금융 당국 수장이 “펀드 수익률이 마이너스 35%일 경우에도 원금 전액을 돌려받는다”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CLSA는 뉴딜 펀드가 투자자들에게 무위험 투자 수익을 안겨줌으로써 “도덕적 해이를 조장한다”고 지적했다.

 

▶뉴딜 펀드 투자 대상은 수소 충전소, 풍력·태양광 발전단지 같은 신재생에너지 관련 설비·시설, 디지털 사회간접자본 등이다. 한국거래소는 배터리, 바이오, 인터넷, 게임 관련 기업 중심의 ‘뉴딜 지수’ 5종을 만들어 뉴딜 펀드의 투자 지표로 삼기로 했다. 하지만 이 업종들은 코로나 사태 이후 이미 투자 열기가 너무 뜨거워 버블 논란이 있는 업종들이다. 이 때문에 CLSA 보고서는 “이미 많이 오른 종목 주가를 더 띄움으로써 정부가 버블 조장에 앞장섰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역대 정권마다 국정 의제를 뒷받침하는 관제 펀드를 만드는 일이 반복돼 왔다. 녹색 성장을 내세운 이명박 정부의 ‘녹색 펀드’, 박근혜 정부가 “통일이 대박”이라고 외치며 만든 ‘통일 펀드’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런 관제 펀드는 정권의 흥망성쇠와 운명을 함께했다. 녹색 펀드는 박근혜 정부 출범 후 녹색 성장 노선 용도 폐기와 더불어 사그라들었고, 통일 펀드는 2016년 개성공단 폐쇄 이후 수익률이 급락하면서 잊힌 존재가 됐다.

 

▶문재인 정부는 유난스레 ‘공공성’을 강조해 왔다. 자영업자 부담을 덜어준다는 관제 카드(제로페이), 전·월세 가격을 통제하는 임대료 상한제, 지역 의사를 양성하겠다는 공공의대 같은 정책은 모두 공공성 집착의 산물이다. 사모펀드에서 투자 손실이 나면 은행 팔을 비틀어 손실을 물어주게 하더니, 급기야 세금으로 투자 손실을 보전해주는 펀드까지 만들었다. 뉴딜 펀드는 ‘투자 손실의 공공화’라는 새 영역을 개척할 참이다.

 

-김홍수 논설위원, 조선일보(20-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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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경험 못 해본 펀드

 

지금까지 이런 펀드는 없었다. 이것은 펀드인가, 정부 재정 사업인가.

 

지난 3일 공개된 ‘뉴딜 펀드’ 얘기다. 나랏돈이 들어가지만 단순한 정부 재정 사업은 아니다. ‘한국판 뉴딜’에 5년간 17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했지만, 그중 70조원은 민간 금융회사 돈이다. 이날 청와대에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가 불려가 ‘뉴딜 청구서’를 받아 온 직후, 금융사들은 앞다퉈 “년간 조원을 투자하겠다”는 자료를 냈다. 뉴딜 펀드에도 20조원 중 13조원이 민간 금융사와 투자자 돈이다.

 

그러면 이게 펀드일까. 그렇다고 하기에는 “사실상 원금 보장”이라는 정부 공직자들 말이 걸린다. 하다못해 국공채 펀드도 ‘원금 보장’이라고 팔면 안 되지 않나. 펀드이면서 공공이 손실을 보전해주고, 국가 사업이지만 민간이 대부분 돈을 대는 정체불명의 혼종. 이게 뉴딜 펀드라고 생각한다.

 

간혹 설명을 들을수록 이해하기 어려운 정책이 있는데, 뉴딜 펀드가 바로 그렇다. 왜 투자 손실을 나랏돈으로 메워주고, 투자 시 세제 혜택까지 줘야 할까. 정부는 “(뉴딜 관련 인프라에) 공공재적 성격이 있고, 국민 경제 전반에 긍정적 효과가 있기 때문”이라 했다. 그렇게 중요한 일이라면 국가 재정으로 하면 될 일 아닌가. 국채 이자보다 비싼 비용을 지불하면서 투자자 돈을 끌어와서 할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일각에서 “정부가 하고 싶은 사업을 하면서도 국가 부채로는 안 잡히게 하는 재정 분식 회계”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정부는 또 뉴딜 펀드가 “국민과 뉴딜의 성과(수익)를 공유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해하기 어렵다. 만기가 긴 뉴딜 펀드에 여윳돈을 넣을 수 있는 건 대부분 중산층 이상일 것이다. 세제 혜택(세율 9%로 분리 과세) 역시 한 해 이자·배당으로 번 돈이 2000만원을 넘는 사람에게나 매력적이다. 그들에게 줄 혜택은 국민이 갹출해 마련한 세금에서 나간다. “손실은 전 국민이 나누고, 수익은 중산층이 챙긴다”는 게 정책 취지라는 말인가.

 

애당초 정부가 ‘뉴딜 관련 기업·프로젝트’라고 찍어준 곳에 민간이 투자하라는 것도 동의하기 어렵다. 물론 디지털·그린 산업 육성이 가야 할 방향이라는 데 이견은 별로 없다. 그러나 정부가 억지로 팔 비틀지 않더라도, 시장은 알아서 ‘될성부른 싹’을 찾아 투자하고 있다. ‘투자자가 혁신 기업을 못 알아보니 정부가 대신 나서겠다’는 발상은 오만이다. 차라리 풀어야 할 규제가 무엇인지 찾아보는 편이 도움 될 것이다.

 

뉴딜 펀드의 어느 면을 뜯어보든 쉽게 이해되지 않자 음모론이 싹튼다. 태양광발전, 2차전지, 자율주행차 등을 앞세워 돈을 빼먹으려고 한 운동권 출신 인사, 전직 장관의 조카, 사모펀드 관계자가 떠오른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기훈 경제부 기자, 조선일보(20-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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