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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北漢山)] .... [노고산(老姑山)(경기 양주)]

뚝섬 2025. 3. 24. 09:41

[북한산(北漢山)]

[세계 휩쓰는 K컬처... 불꽃처럼 치솟는 ‘삼각산’의 정기 덕분]

[“삼각산 이름 되찾자”]

[노고산(老姑山)(경기 양주)]

 

 

 

북한산(北漢山)

 

서울에 있는 산 이름에 왜 '북한'이 들어갈까… '북쪽 큰 산'이라는 뜻 

 

봄날 북한산 백운대를 찾은 시민들이 바위 위에서 휴식하고 있어요. /고운호 기자

 

봄을 맞아 주말에 인근 산으로 나들이를 가시는 분이 많을 거예요. 요즘엔 서울 도심과 가까운 북한산을 찾는 방문객이 많은데요. 서울과 경기도에 걸쳐 있는 이 산은 왜 이름에 ‘북한’이 들어갈까요? 북한산은 한때 산 이름을 삼각산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는데요. 이름의 유래를 알고 방문하면 북한산 산행이 더 즐거울 거예요.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조선 시대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와 끝까지 싸우자고 주장했던 문신 김상헌은 청나라에 잡혀가며 이 같은 시조를 남겨요. 여기서 나오는 삼각산(북한산)은 서울 강북구와 노원구 일대에서 봤을 때 백운대와 인수봉, 만경대가 세 개의 뿔처럼 보인다고 해서 유래한 이름이죠. 어떤 사람들은 일제강점기에 ‘북한산’이라는 이름이 공식화됐다고 오늘날 북한산을 다시 삼각산으로 바꿔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해요.

 

하지만 북한산은 과거부터 사용되던 이름이었어요. 신라 진흥왕은 지금의 서울 땅을 점령한 것을 기념해 북한산 비봉 꼭대기에 ‘순수비’를 세웠어요. 고려 시대 역사서 ‘삼국사기’엔 진흥왕이 ‘北漢山(북한산)’에 왔다는 기록이 남아있답니다.

 

북한산은 지금의 북한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북한산이라는 이름이 유래한 건, 큰 강과 큰 산이 있어서예요. 크거나 넓은 것을 의미하는 순우리말 ‘한’을 한자로 쓰면서 ‘한수 한(漢)’ 자가 사용된 거예요. 요즘도 외국인이나 지방에서 처음 서울을 오는 사람들은 한강의 크기에 놀라고, 북한산의 산세에 놀라요. 옛날에는 한양 땅에 처음 왔을 때 더 놀랐을 거예요. 따라서 한강은 ‘큰 강’이라는 의미로, 북한산은 한강 북쪽의 큰 산이란 의미로 부르기 시작한 것으로 학자들은 추측하고 있어요.

 

“한강 북쪽에는 남산도 있고, 인왕산도 있고, 북악산도 있는데요?”라고 되물을 수 있어요. 백운대∙인수봉∙만경대 3개 바위 봉우리를 삼각산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봉우리마다 이름이 있지만 산자락 전체를 부를 때 북한산이라 불렀던 것으로 추측돼요. 지금은 빌딩이 늘어서 있지만 옛날에는 북한산 능선이 남산까지 이어졌을 거예요. 그래서 과거엔 한강 이북 서울 일대를 북한산, 한강 이남을 남한산이라 불렀다고도 해요.

 

북한산이라는 이름은 조선 숙종 때 만든 ‘북한산성’으로 인해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설이 있어요. 험준한 바위산인 북한산에 돌을 쌓아 만든, 둘레 13km에 이르는 큰 산성이었지요.

 

놀라운 것은 6개월이라는 기록적인 공사 속도인데요. 전문 기술자 외에도 노역자가 4만명이었을 것으로 추정해요. 당시 한양 인구는 10만~20만명으로 추측되는데, 양반을 제외하고 몸이 성한 어른은 남녀 가릴 것 없이 모두 동원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지요.

 

험준한 북한산에서 고된 노동을 했으니, 서민들에겐 ‘북한산’이란 이름이 몸에 새겨질 정도로 익숙해졌겠지요. 이게 공식 지명으로까지 굳어진 것으로 보여요. 삼각산도 틀린 이름은 아니지만, 북한산이야말로 서민들의 삶에서 전하고 전해진 이름이라고 볼 수 있지요.

 

-신준범 월간 산 기자, 조선일보(25-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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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휩쓰는 K컬처... 불꽃처럼 치솟는 ‘삼각산’의 정기 덕분

 

[김두규의 國運風水]

일제가 격하한' 제왕의 땅'
대한민국 진산으로 복권해야
 

 

조선 왕조에서 ‘나라를 보호해주는 신’으로 모시며 제사까지 지냈던 삼각산. 우뚝 솟은 바위가 불의 기운을 뿜어낸다. /문화재청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청나라로 끌려가던 김상헌이 읊었던 시조다. 북한산의 중심으로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로 구성된 삼각산은 조선의 상징이었다. 흔히 백두산을 한민족의 진산(鎭山)으로 보지만 그렇지 않다세종 이전까지는 여진족의 땅이었고, 이후로도 여진족과 청나라가 더 성스럽게 여기는 그들의 진산이었다지금은 북한의 진산일 뿐이다.

 

“만주 땅을 삶터로 삼았던 고조선의 우리 조상들에게는 백두산보다 의무려산(중국 랴오닝성 진저우시)이 진정한 진산이었다.”(윤명철 동국대 명예 교수) 진산은 나라 혹은 고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일 뿐만 아니라, 영험한 땅기운은 그 땅의 사람들을 키워주는 역할을 한다. ‘산이 사람을 키워준다(山主人)’는 풍수 격언이나 인걸지령이란 말도 이와 같은 관념에서 나왔다.

 

지금 우리의 실질적 진산은 어디일까? 조선 후기 실학자 신경준은 백두산보다 삼각산을 더 중시하여 “첫째가 삼각산, 둘째가 백두산”이라고 하였다. 삼각산은 조선 건국 직후 “나라를 보호해주는 신(호국백·護國伯)”이란 작위와 제사를 받았다. 조선 왕조가 삼각산을 얼마나 중시하였는가는 그 경계 표시에서 잘 나타난다. 대부분의 행정구역은 산 능선이나 물의 한가운데 이쪽저쪽으로 경계 짓는다. 그런데 삼각산은 이러한 원칙에 따르지 않고 만경대·백운대·인수봉을 중심에 넣고 주변의 작은 산과 천을 포함했다. 그들로 하여금 삼각산을 호위케 함이었다. 1861년 김정호가 그린 ‘청구전도’에는 삼각산이 마치 사람 머리처럼 표시된다.

 

이러한 삼각산 지위는 1910년 조선을 병탄한 일본이 훼손한다. 일제는 ‘한성’을 ‘경성’으로 바꾼다. ‘한성’이 국가의 도읍지(국도·國都) 자격이었다면, ‘경성’은 경기도 관할이었다. ‘조선 지우기’였다. 경희궁 철거(1910),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1911), 황제국을 상징하던 환구단 철거(1913), 경복궁 안에 조선총독부 건립(1926), 종묘와 창덕궁 사이 지맥 자르기(현재의 율곡로) 등도 대표적 사례다. 지금의 서울 강북구와 경기 고양시에 걸친 삼각산도 국도인 한성 땅이 아닌 경기도 땅으로 축소·격하된다.

 

왜 조선은 삼각산을 그렇게 중시했을까? “인수·백운·만경 세 봉우리가 깎아 세운 듯 우뚝 솟은 모양이 세 뿔과 같다”는 삼각산은 “용이 서리고 범이 웅크리고 있는(용반호거·龍盤虎踞) 형세”라고 하였다(‘신증동국여지승람’). “용반호거의 땅에서 제왕이 나온다(제왕지지·帝王之地)”고 촉나라 승상으로 풍수에 능했던 제갈량은 말했다. 쪼개진 바위가 아니라 거대한 암괴 그 자체다. 바위는 강력한 권력의 기운을 준다. 왕권 강화가 목적이었던 조선 왕조를 지켜 줄 진산으로 손색이 없었다. 반면 조선을 멸망시킨 일제로서는 삼각산 지위를 그대로 둘 수 없었다. 격하해 모욕을 주어야 했다. 일종의 풍수 침략’이다.

 

삼각산은 맑고 밝아 멀리까지 그 양명한 기운을 발산한다. 화산(華山·화려한 산)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다. 바위로만 된 산이다 보니 수기(水氣)가 부족한 반면 화기(火氣)가 강하다. 불꽃처럼 위로 치솟는 산이다. 불[火]은 타오르면서 세상을 밝고 따뜻하게 해준다. ‘주역’에서 불을 문화·문명으로 상징하는 이유다. 세계를 휩쓰는 K컬처가 서울을 중심으로 떨쳐 일어난 것도 삼각산 정기 덕분이다. 지금 우리에게 삼각산이 더 중요한 이유다.

 

일제가 격하한 삼각산 지위는 아직까지 복권되지 않고 있다. 여전히 서울시 땅이 아닌 경기도 땅이다. 박겸수 강북구청장이 필자의 무지를 일깨워주기 전까지, 필자 역시 삼각산을 행정구역상 서울시 땅으로 알고 있었다. 서울(그리고 대한민국)의 진산으로서 삼각산의 조속한 ‘복권’을 기대한다.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조선일보(21-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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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산 이름 되찾자”

 

“삼각산 이름 되찾자” 두번째 도전

2004년 서울시 “고증 거쳐 나중에 재심의”
강북구, 10월부터 국민서명운동 벌이기로

 

28일 서울 강북구 우이동 솔밭근린공원. 솔숲 너머로 북한산(삼각산)의 세 봉우리(만경봉·인수봉·백운봉)가 한눈에 보이는 이곳에 눈에 띄는 조형물이 서 있다. 삼각형 형태로 돌을 쌓은 것으로, 북한산(삼각산)의 세 봉우리를 상징하고 있다.

주민 김옥희(72)씨는 “오래전부터 삼각산으로 불러왔는데 언제부터인가 북한산이라고도 부르기 시작해 지금은 두 곳이 다른 산인 줄 아는 사람들도 많다”며 “원래의 이름 ‘삼각산’을 되찾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983년 공식이름 바뀌어

세 봉우리가 우뚝 솟은 모양이 세 개의 뿔과 같아 이름 붙었다는 ‘삼각산’(三角山). 서울 강북·도봉구 등 6개 구와 경기도 고양·양주시 등 서울과 경기의 9개 기초자치단체가 접하고 있다.
 

 

백운봉-인수봉-만경봉 등 봉우리가 솟은 모양이 세 개의 뿔을 깍아 세운 것 같다는 삼각산(三角山) 전경/강북구 제공

 

‘삼각산’은 서울 시내 50여 개 학교의 교가에도 등장하는 ‘유명’한 산이지만, 정작 정부가 발행한 지도에서는 그 이름을 찾기 힘들다.  1983년 삼각산과 도봉산 일대가 북한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삼각산 대신 북한산이 공식 명칭이 됐기 때문이다. 이곳은 고려 시대 이후 1000여년 동안 ‘삼각산’으로 불리다가 일제시대 행정구역·지명 개편을 계기로 북한산과 혼용되었다.

구 면적의 절반 이상(53%)을 차지하는 삼각산의 이름을 되찾기 위해 서울 강북구가 오는 10월부터 대대적인 국민 서명운동을 벌인다. ‘삼각산 제 이름찾기 범국민운동본부’도 발족할 계획이다. 현재 학계, 종교계, 시민단체 등 각계 인사 70여 명이 참여의사를 밝혔다.

◆”삼각산을 강북구의 브랜드로”

삼각산 명칭복원 운동은 강북문화원장을 지낸 김현풍 강북구청장이 2002년 취임하면서 본격화됐다. “일제가 삼각산이 내뿜는 정기를 죽이기 위해 순한 느낌의 북한산으로 바꿔 불렀다. 우리 민족의 역사와 정기를 찾는 계기를 마련하자”고 각계에 호소했다.

2003년 문화재청이 세 봉우리를 명승지로 지정할 때 ‘삼각산’이라는 명칭을 인정받는 성과를 거뒀다. 2005년에는 산림청이 ‘우리 산 이름 찾기 공모’를 벌여 북한산을 삼각산으로, 백운대를 백운봉으로 부르는 안을 채택하기도 했다.

그러나 공식명칭을 되찾기 위해서는 서울시 지명위원회와 중앙지명위원회 심의를 통과해야 한다. 지난 2004년 서울시 지명위원회가 이 안에 대한 심의를 벌였으나, “삼각산에 대한 정확한 고증절차를 거친 뒤 나중에 재심의하겠다”며 보류 결정을 내렸다.

삼각산 제이름 찾기 운동에는 주민들도 적극적이다. 풍림 아이원 아파트 주민들은 아파트 명칭을 삼각산 아이원으로 바꿨고, 삼각산 부동산 등 상점 이름에 ‘삼각산’을 붙인 곳도 늘어났다. 강북구민회관을 삼각산문화예술회관으로 바꾼 것을 비롯해 삼각산 소방파출소, 삼각산 지구대, 삼각산 구조대 등 ‘삼각산’ 명칭이 붙은 관공서도 속속 생겼다. 삼각산 초·중학교에 이어 삼각산 고교도 개교를 앞두고 있다.
 

 

강북구가 만든 각종 자료와 관광지도는 물론 삼각산으로 표기했으며, 구청장 관용 승용차의 차량번호까지 삼각산 정상 백운봉의 높이(836.5m)를 따 ‘8365’번으로 정하기도 했다.

구는 삼각산으로 명칭이 바뀌면 박물관과 생태관을 들일 계획이다. 박물관에는 이준·손병희·신익희 선생 등 강북구에 묘역이 있는 애국지사들의 유품을 전시하고, 생태관에는 삼각산에 서식하는 동·식물을 전시한다는 구상이다. 북한산성 행궁 등 문화재 복원 사업도 벌이기로 했다.

◆고양시는 반대 입장

걸림돌도 있다. 북한산국립공원 중 가장 많은 면적이 포함되어 있는 경기도 고양시가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양시는 “삼각산의 세 봉우리 지번은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으로 돼있고, 산속에 사는 사람들도 대부분 북한동 주민”이라며 “혼란을 일으킬 수 있는 명칭 변경에 응할 수 없다”고 밝혔다.

김현풍 강북구청장은 “경기도가(歌)의 첫 소절도 삼각산으로 시작되는데, 고양시가 반대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며 “삼각산 명칭복원은 민족혼을 살리자는 의미라는 것을 이해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선일보(07-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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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산(老姑山)(경기 양주)

15. 노고산은 옛날에 노고 할머니에게 치성을 드리던 산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한미산이라고도 불리웠다.

13. 인수봉-백운대-만경대-노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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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원글출처): 『효빈, 길을 나서다~  https://blog.daum.net/0709im/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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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곳 창릉천에서 바라보는 북한산이 절경이다.

 

 

3. 당겨본 원효봉과 북한산 수뇌부의 모습..

 

 

4. 흥국사 일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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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독립운동의 근거지이기도 했던 흥국사는 구한말과 일제시대에 의병장 연기우의 근거지이기도 했다.

 

 

8. 노고산은 한북정맥의 일부이기도 하다.

 

 

9. 좌측부터 인수봉과 백운대-만경대-노적봉, 그 앞으로 염초봉-원효봉.. 우측은 문수봉-나한봉, 그 앞줄은 의상능선의 의상봉과 용출봉으로..

 

10. 맨 좌측 바위 봉우리는 영장봉..

 

 

11. 맨 좌측 짤린 노적봉과 그 아래 원효봉, 가운데서 좌측으로는 문수봉-나한봉, 그 앞줄엔 용출봉과 의상봉이~ 우측으로는 승가봉-사모바위, 비봉-향로봉-족두리봉이 있는 비봉능선으로 이어진다.

12. 우측 북한산 주봉우리들에서 그 좌측 영봉으로 내려와 가운데 왕관봉과 좌측으로 상장능선의 상장봉으로 이어진다.

 

13. 인수봉-백운대-만경대-노적봉..

 

 

14. 군부대가 주둔한 노고산 정상..

 

 

15. 노고산은 옛날에 노고 할머니에게 치성을 드리던 산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한미산이라고도 불리웠다.

 

16. 사패산-도봉산-상장능선..

 

 

17. 가운데서 우측으로 첫번째 바위 봉우리가 상장봉.. 가운데 도봉산 오봉, 좌측 끝이 여성봉..

 

 

18. 바위가 있는 가장 높은 곳에서.. 은평구와 불광동 방향.. 희미하지만 우뚝 솟은 소래산과 우측 뒤로 인천 계양산도 보인다.

 

19. 일산 신도시..

 

 

20. 가운데 강화의 마니산과 우측으로 진강산과 해명산-상봉산..

 

 

21. 아래 도로는 구파발에서 장흥-송추로 이어진 북한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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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상장능선의 상장봉 들머리 솔고개..

 

 

26. 가운데 상장봉은 설악산 달마봉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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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산딸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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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맨 좌측 봉우리가 여성봉..

 

 

32. 사패산..

 

 

33. 서울외곽순환도로가 보이는 도로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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