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國史-文化] 697

[러시아 내전과 대한 독립 운동의 분열]

러시아 내전과 대한 독립 운동의 분열 [김명섭의 그레이트 게임과 한반도] 김구와 충돌 후 이동휘 러시아로… 한국 이념 분열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1917년에 시작된 러시아 내전으로 5백만명 이상이 죽었다. 미국 남북전쟁(1861~65)의 10배가 넘는 수치다. 미국은 20세기 세계 제국이 되면서 내전의 상처를 덮었다. 러시아도 1922년 공산 제국 소련으로 팽창하며 내전의 상처를 미봉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러시아 내전의 상처는 다시 터졌다. 푸틴은 공산당을 “바퀴벌레 정당”이라며 경멸했지만, 소련 해체는 지정학적 대재앙이라고 보았다. 사실 더 큰 재앙은 소련 해체보다 1922년 소련을 탄생시킨 러시아 내전이었다. 러시아 내전은 러시아는 물론 한반도를 포함한 유라시아 전체에 길고 깊은 영향을 미..

[궁예와 후고구려] [궁예도성(弓裔都城)]

[궁예와 후고구려] [궁예도성(弓裔都城)] 궁예와 후고구려 칠장사 승려 출신… 토지 면적대로 세금 매기는 개혁 최근 경기 양주 대모산성에서 목간(木簡)이 출토됐습니다. 목간이란 글씨를 적은 나뭇조각을 말해요. 그런데 전문가가 이 목간의 123글자를 검토한 결과, 신라·후백제와 함께 후삼국시대 나라였던 태봉(후고구려·901~918)이 남긴 것으로 확인된 최초의 문자 자료라고 합니다. 궁예(?~918)가 세웠던 나라인 태봉은 국호를 '고려'나 '마진'이라고도 했고, 궁예가 왕에서 쫓겨난 뒤 태조 왕건(재위 918~943)의 고려 왕조로 계승됐습니다. 그러니까 태봉이라는 나라의 임금은 궁예 한 명이었던 것이죠. 궁예는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칠장사의 승려, 중부 지방을 단숨에 장악 경기 안성에 칠장사라는 고찰(..

[이승만이 남긴 교훈들.. 대세 거슬러 지킨 자유민주주의]

이승만이 남긴 교훈들.. 대세 거슬러 지킨 자유민주주의 [복거일의 이승만 오디세이] 대세 거슬러 지킨 자유민주주의… 이승만 삶을 배워야할 이유다 이승만 대통령이 정치 무대에서 내려온 지 어느덧 60년이 넘었다. 지금 우리 사회를 이끄는 사람들은 거의 다 그가 하야한 뒤 태어났다. 그런 상황에서 이승만의 삶은 우리에게 무슨 뜻을 지니는가? 뉴욕서 '영웅 행진' 카퍼레이드-미국을 공식 방문한 이승만이 1954년 8월 2일 뉴욕시가 마련한 '영웅 행진' 카퍼레이드에서 뉴욕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맨 앞 차량 일어선 사람이 이승만이다.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현장마다 함께했던 이승만은 전체주의의 위협을 경계하며 자유민주주의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힘썼다. /'사진과 함께 읽는 대통령 이승만'(기파랑) 이 ..

[17~18세기 서울 팽창.. 인구 5만 한양.. ]

17~18세기 서울 팽창.. 인구 5만 한양, 17세기 유랑민 몰리며 30만 도시로 확장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경기 김포시를 서울에 편입시키는 방안을 거론하고 있어요. 서울은 조선 건국 초기만 해도 '한양 도성 내'를 의미했는데, 17~18세기에는 도성 밖으로 범위가 확장되고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났어요. 17~18세기 서울의 팽창과 도시 구조 변화를 알아보겠습니다. 조선 건국 초기 서울 조선 건국 초 서울은 개성보다 훨씬 작은 도시로 건설됐습니다. 건설 책임자 정도전은 길이 18.2㎞의 서울 성곽을 쌓고, 그 안에 종묘와 사직단, 궁궐과 관청, 성균관, 시장 등을 건설했어요. 양반 관료는 살기 좋고 출근 거리가 가까운 북촌 지역에 자리를 잡았고, 인구는 대략 5만여 명으로 추정해요. 조정은 ..

[12월의 전쟁] [“후퇴? 우리는 다른 쪽으로 진격 중이라고!”] ....

[12월의 전쟁] [“후퇴? 우리는 다른 쪽으로 진격 중이라고!”] [장진호 70년] [에드윈 시먼스 '제4중대장'] 12월의 전쟁 [임용한의 전쟁사] 한국전쟁 때 참전했던 미군들은 푹푹 삶는 여름의 무더위, 체감기온 영하 30도까지 내려가는 추위를 악몽처럼 기억한다. 고통스럽기는 겨울의 추위가 더 기억에 남는 듯하다. 장진호 전투, 1951년 중공군의 춘계 대공세 등, 최악의 전투가 겨울에 몰려 있던 탓도 있을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겨울은 전쟁의 계절이었다. 거란, 여진, 후금 등 만주의 유목민족은 가을에 군대를 소집해서 겨울에 한반도를 침공했다. 유목민족은 민과 군이 일치하는 사회구조를 지니고 있기에 1월이 되면 생업 전선에 복귀하기 위해 전사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음력과..

[독립운동 세대서 경제 발전 세대로… 이승만 후계자는.. ]

독립운동 세대서 경제 발전 세대로… 이승만 후계자는 박정희였다 [복거일의 이승만 오디세이] 우남의 후계자 식민지 시대의 조선 사람들에게 이승만은 전설적 지도자였다. 상해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이었다는 경력과 미국에서 수행한 독립운동은 그의 명성을 한껏 높였다. 그래서 해방 뒤에 나온 모든 정당이 그를 지도자로 받들었다. 박헌영이 주도한 ‘조선인민공화국’도 주석에 아직 귀국하지도 않은 이승만을 올렸다. 덕분에 이승만은 가장 큰 추종 세력을 이끌면서 정국을 주도했다. 이승만 서거 후 프란체스카 여사 만난 박정희-이승만 서거 후 한국으로 돌아온 프란체스카 여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 박정희의 경제정책인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이승만이 추진한 '경제개발 3개년 계획'에 바탕을 두었다. 그..

[‘정조의 꿈’이 현실로 된 화성] [정약용]

[정약용] ‘정조의 꿈’이 현실로 된 화성 ‘정조의 꿈’이 현실로 된 화성 경기도 화성(華城)의 이름은 조선 정조가 작명했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수원으로 옮겨 현륭원을 조성했다. 정조는 능을 보호할 성곽 터를 둘러보면서 장자의 화인축성(華人祝聖) 고사를 떠올렸다. 화(華) 지방 제후가 요 임금에게 부귀, 장수, 다산을 기원했다는 내용이다. 정조는 ‘백성은 왕실의 안녕을, 임금은 백성의 번영을 기원하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의미로 ‘화성’이라 이름 지었다. 풍요의 고을이 되라는 염원을 담은 셈이다. ▶정조의 바람과 달리 현대사에서 화성은 ‘오욕’에 시달렸다. 1986~1991년 사이 화성군 태안읍 일대에서 10건의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잔혹하게 살해된 여인들 사체가 농수로, 논바닥 등..

[제1차 세계대전과 대한독립운동]

제1차 세계대전과 대한독립운동 [김명섭의 그레이트 게임과 한반도] 제국들의 해체… 최초의 ‘세계전쟁’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태어났다 제1차 세계대전은 약 1500만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다. 청나라에서 벌어졌던 태평천국내전(1850~1864)보다 사망자 수는 적었지만 그 영향은 더 세계적이었다. 세계의 여러 제국이 해체되고 독립국들이 늘어났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어 체코슬로바키아를 비롯한 여러 독립국들이 생겨났다. 아프리카에서 칭다오를 거쳐 태평양에 이르렀던 독일 제국도 해체되었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해체로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등이 독립했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독립하는 과정에서 오늘날 분쟁의 씨앗이 뿌려졌다. 러시아 제국이 해체되면서 핀란드, 폴란드, 그리고 우크라이나 등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