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國史-文化] 697

[세계문학 전집] ["춘원, 만지면 만질수록 덧나는 상처"]

[세계문학 전집] ["춘원, 만지면 만질수록 덧나는 상처"] 세계문학 전집 [김도훈의 엑스레이] 새해면 다짐을 한다. 매년 다짐은 글을 더 잘 쓰자는 것이다. 매년 실패한다. 글은 외모와 같다. 글솜씨도 어느 정도는 타고난다. 내 얼굴을 김수현처럼 만들 수 없다면 글도 계속 이 모양일 것이다. 참, 여기서 김수현은 배우다. 드라마 작가가 아니다. 조선일보 독자 세대의 넓은 폭을 알고 있기 때문에 굳이 한 번 더 강조하는 것이다. 어느 새해 어머니는 외판원 꼬드김에 넘어가 양장으로 된 세계문학 전집을 샀다. 그래서 내가 남들보다 빨리 세계문학을 읽어낸 영특한 아이가 되었느냐. 그럴 리가. 누구는 십대 시절 읽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인생을 바꿨다고 했다. 신격호 회장이 회사 이름을 여주인공 이름에서 ..

[당대 최고의 감식안 오세창.. 신라~조선 서화가 역사 정리]

당대 최고의 감식안 오세창.. 신라~조선 서화가 역사 정리 [김인혜의 살롱 드 경성] “은인자중하다 기회가 오면 와락 출동해야 하네” 새해 들어 국립중앙박물관 기증관에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가 다시 전시된다고 한다. 추사가 제주도 유배 중 제자 이상적에게 그려준 작품. 사실 ‘세한도’는 가로 70㎝ 정도의 작은 그림이고, 장장 14m에 달하는 중국과 조선 문인 20명의 감상평이 진짜 압권이다. 이 중 1949년 위창 오세창(1864~1953)이 쓴 글이 두루마리 끝자락에 나온다. “금년 9월에 군(君)이 문득 소매에 넣고 와서 나에게 보이기에 서로 펴서 읽고 어루만지니 비유컨대 황천(黃泉)에 있는 친구를 일으켜 악수하는 것과 같이 기쁨과 슬픔이 한량없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두루마리 끝자락에 ..

[죽으면 쫓겨났던 서울 사대문 안에 死者를 위한 공간이 있네]

죽으면 쫓겨났던 서울 사대문 안에 死者를 위한 공간이 있네 성공회성당에 있는 무덤의 비밀 ‘도성 10리 안으로 들어와 무덤을 쓴 자는 사형에 해당하나 감하여 유배를 보낸다.’(‘대전통편’ 형전 금제(禁制) 경성십리내입장자(京城十里內入葬者)) 조선시대 수도 한성에서 사람이 죽으면 사대문 안은 물론 성저십리(城底十里)라고 부르는 성밖 10리까지도 무덤을 만들지 못했다. 거기에 사람을 묻으면 사형에 맞먹는 유배형을 당했다. 그런데 그 엄한 조선 법과 관습에도 불구하고 사대문 안에 무덤이 있는 공간이 있다. 서울 정동에 있는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과 가톨릭 명동성당이다.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1층에는 성세례요한성당이 있다. 여기에는 이 성당 건물을 건축한 3대 교구장 마크 트롤로프 주교가 묻혀 있다. 천주교 명동..

[해방 후 첫 정치 테러, 배후 없는 ‘몽상가’의 범행이었나?]

해방 후 첫 정치 테러, 배후 없는 ‘몽상가’의 범행이었나? [전봉관의 해방 거리를 걷다] 어지러운 해방 정국… 우익 지도자 송진우 암살사건 총독부 2인자 엔도 류사쿠 정무총감이 패전 후 ‘치안 유지’ 요청을 위해 처음 접촉한 인물은 여운형이 아니라 전 동아일보 사장이자, 우익 지도자 송진우였다. 그 또한 일본과 타협하는 행위라 생각한 송진우는 엔도의 제안을 즉석에서 거부했다. 이후 엔도의 제안을 수락한 여운형이 ‘건국준비위원회’ 참여를 요청했을 때는 여운형을 ‘경멸’하며 그 제안 역시 단칼에 거절했다. 대신 호남 지주와 우익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임시정부(임정) 봉대(奉戴)’를 기치로 한국민주당(한민당)을 조직했다. ‘당수’에 오르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이승만과 김구가 환국하면 당수로 추대해야 한다는 ..

[손웅정씨의 ‘교육 철학’] [명사들의 자녀교육]

[손웅정씨의 ‘교육 철학’] [명사들의 자녀교육] 손웅정씨의 ‘교육 철학’ 조선 초기 영의정을 지낸 황희에겐 기방을 자주 드나드는 아들이 있었다. 말로 타일러서는 듣지 않자 충격 요법을 썼다. 기방에서 돌아오는 아들을 대문에서 큰절로 맞으며 “네가 내 말을 듣지 않는 걸 보니 나를 아비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앞으로 너를 손님의 예로 대하겠다”고 선언했다. 그제야 아들이 무릎을 꿇고 “기방에 가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명재상 황희조차 자식 교육만큼은 뜻대로 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일화다. ▶양자역학 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의 아버지는 유니폼 판매원이었다. 변변한 지식은 없었지만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착안한 것이 ‘산책 학습’이었다. 아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것이 생기면 책..

[‘동양의 화약고’된 만주.. 臨政이 상해로 간 건 ‘신의 한 수’였다]

[‘동양의 화약고’ 된 만주… 臨政이 상해로 간 건 ‘신의 한 수’였다] [만주사변] [‘폭발 자작극’ 빌미로 만주 점령… 日 국제 고립 자충수] ‘동양의 화약고’ 된 만주… 臨政이 상해로 간 건 ‘신의 한 수’였다 [김명섭의 그레이트 게임과 한반도] 1931년 만주사변과 대한민국임시정부 만주국은 일제가 세운 괴뢰 국가였다. 하지만 본질을 숨기기 위해 ‘오족협화(五族協和·다섯 민족의 협력과 화해)’를 내세웠다. 왼쪽 깃발은 1911년 신해혁명군 깃발, 중앙의 오색기는 장쉐량 군대 깃발, 오른쪽은 장제스군의 청천백일기다. 아래에는 ‘공화만세’라고 적혀 있다. /위키피디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앞서 푸틴은 지정학적 에세이 한 편을 인터넷에 올렸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역사적 운명 공동체라는 것이 요지였..

[부산 상징 ‘용두산’, 왜관 시절 일본인들이 붙인 이름이라네]

부산 상징 ‘용두산’, 왜관 시절 일본인들이 붙인 이름이라네 [박종인 기자의 ‘흔적’] 용두산공원에 얽힌 코미디 같은 역사 부산 용두산공원에 있는 공원비. 원래는 대통령 이승만 호를 따서 '우남공원'으로 명명됐으나 4·19 4개월 뒤인 1960년 8월 '독재자 흔적 지우기' 일환으로 '용두산공원'으로 개칭됐다. 그런데 공원이 있는 산 이름 '용두산'은 19세기 초량왜관에 살던 대마도 사람들이 지은 지명이고 공원은 1916년 일본 천황을 기념해 만든 공원이다. /정성문 제공 부산 중구 ‘용두산공원’에는 부산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있다. 용(龍)이다. 기단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다. ‘여기는 이 나라의 관문 국토의 정기가 서려 맺힌 곳/ 백두산 힘차게 뻗어 내린 금정산맥 앞바다 푸른 물결 태평양 맞물렸네.’ 1..

[전형적이지 않아서 더 흥미로운 한국의 모습] [화성]

[전형적이지 않아서 더 흥미로운 한국의 모습] [화성] 전형적이지 않아서 더 흥미로운 한국의 모습 [김영민의 본다는 것은] 사진을 통해 본 한국 평상시 물고기가 물을 의식하지 않는 것처럼, 평상시 한국인들은 한국을 의식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한국인은 그저 인간이다. 그러나 해외에서는 다르다. 그저 인간이기를 그치고 새삼 한국인이 된다. 음식의 경우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한국에서 한국인은 그저 음식을 먹는다. 백반을 먹을 때조차 우리는 음식을 먹는 것이지 한국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해외에서는 다르다. 똑같은 음식도 이제 ‘백반’이기를 그치고 ‘한식’이 된다. “백반 먹으러 갈까”가 아니라 “한식 먹으러 갈까”라고 말하게 된다. 이처럼 한국을 벗어났을 때, 한국을 보다 첨예하게 의식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