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經濟-家計]

[‘쉬운 돈’의 대가 안 치르고 넘어가려는 한국] ....

뚝섬 2023. 6. 14. 09:57

[‘쉬운 돈’의 대가 안 치르고 넘어가려는 한국]

[아랫사람 말을 경청하라]

[‘작은 정부’ 앞세운 윤석열, 레이건의 ‘위대한 설득’부터 배워야]

[美 연준 “고통 있어도 긴축”… 우리도 피할 수 없는 ‘쓴잔’]

[파월 “고통 감수하고 금리 계속 올린다”, 한국 경제에도 위기 경보]

 

 

 

‘쉬운 돈’의 대가 안 치르고 넘어가려는 한국

 

[송평인 칼럼]

제로금리는 기축통화국의 말기적 증상
미국 따라 내린 금리로 부채 키운 한국
금리 올릴 때는 미국만큼도 못 올려
자산거품 꺼지기도 전에 다시 부푼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부의장을 지낸 앨런 블라인더 프린스턴대 경제학 교수가 쓴 ‘미국의 통화·재정사(A Monetary and Fiscal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1961∼2021’이 지난해 나왔다. 이 책은 벤 버냉키와 그 후임인 재닛 옐런의 저금리 정책이 빚은 결과를 다루고 있는 데다 통화정책만이 아니라 재정정책까지 조망하고 있어 돈 풀기에 중독된 미국의 모습을 역사적 맥락에서 그려 볼 수 있게 해준다.

버냉키와 옐런은 밀턴 프리드먼의 저서 ‘대공황’에 입각해 통화정책을 폈지만 실은 자처하는 케인스주의자다. 다만 기존 케인스주의자들이 재정정책으로 돈을 퍼붓는 주의라면 이들은 ‘재정정책 받고 통화정책 더’로 곱절로 퍼붓는 주의라는 점이 차이다. 둘은 제로금리로도 모자라 양적완화(QE)까지 해가며 돈을 공급했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포워드 가이던스(forward guidance)라는 방식으로 장기간의 저금리를 예고함으로써 경제주체들이 과도한 리스크에도 손해 보지 않는 세상을 만들었다.

블라인더는 공급측 정책으로 불리는 감세정책도 케인스주의에 반한다고 보지 않는다. 레이건, 아들 부시, 트럼프 때의 감세 정책은 재정 악화를 동반했다는 점에서 케네디, 존슨, 닉슨, 포드, 카터, 오바마, 바이든 때의 경기부양 정책과 다를 바 없었다. 케네디부터 지금까지 건전한 재정정책을 편 대통령은 아버지 부시와 클린턴밖에 없다. 미국은 한편으로는 복지라는 형태의 경기부양으로, 또 한편으로는 감세라는 형태의 경기부양으로 국가부채를 아이젠하워 시대에서는 상상할 수 없도록 불려 왔다. 반복되는 ‘재정절벽’ 위기는 그 결과다.

 

‘닥터 둠’으로 불리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명예교수의 ‘초거대위협(Megathreats)’도 지난해 나왔다. 그는 실패한 통화정책으로 인한 천문학적 부채를 미국을 위협하는 요소로 꼽는다. 미국은 지난 40년 동안 거품 붕괴로 인한 충격에 한결같이 더 쉽게 빌릴 수 있는 돈(easy money)을 창조하는 방식으로 대응해 왔으며 그 최종 귀결이 제로금리다.

1960, 70년대 케네디-존슨의 민주당 정부와 닉슨-포드의 공화당 정부가 앞다퉈 푼 돈은 1980년 전후 볼커가 21%까지 끌어올린 금리로 흡수할 수 있었으나 이후 그린스펀, 버냉키, 옐런이 통화정책으로 푼 돈은 정부 기업 가계에 심각한 부채를 쌓아 5%대 금리만으로도 은행들이 파산할 정도여서 파월에게는 그 이상의 금리 인상이 버거운 실정이다.

세계적 헤지펀드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의 설립자인 레이 달리오는 2021년 ‘변화하는 세계질서(The Changing World Order)’라는 책에서 이런 사태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돈을 찍어내는 목적은 부채 부담을 줄이는 것이다(the goal of printing money is to reduce debt burden).” 헤지펀드를 운영해 막대한 돈을 벌어 본 사람으로서 오늘날 왜 리스크를 감수하는 쪽이 무조건 돈을 버는지 비법을 고백한 셈이다.


이 책은 ‘국가 성쇠의 이유’라는 거창한 부제를 달고 있다. 기축통화국은 예외적인 차입력(borrowing power)과 지출력(spending power)을 바탕으로 너무 많이 빌리고 너무 많이 쓰는 경향이 있다. 중앙은행이 제로금리를 유지하고 부채 만기를 연장해주면 채무자는 상환 없이 공짜로 돈을 계속 쓸 수 있다. 이런 현상이 금융위기로부터 코로나 시대에 이르는 기간에 일어났고 역사의 다른 시기에도 기축통화국이 쇠퇴하던 때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한국은 기축통화국도 못 되면서 미국이 금리를 낮출 때는 질세라 따라가며 부채를 방조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금융통화위원회는 정부로부터 독립해 있으나 연준으로부터는 독립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과연 그런가. 미국이 금리를 올릴 때는 한미 금리 차가 역대 최대로 벌어지는데도 인상을 서둘러 동결했다. 실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경제’에 매달린 정부로부터 독립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돈의 규율이 무너진 미국만큼도 ‘쉬운 돈’의 대가를 치르지 않으려 하니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벌써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물가 상승은 자산 가격이 하락했기 때문에 감내할 만했다. 앞으로는 물가 상승이 지속되면서 자산 가격도 상승할 것이다. 진짜 고통스러운 인플레이션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동아일보(2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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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사람 말을 경청하라

 

[차현진의 돈과 세상]

 

권위 의식 중 하나는 쉬운 말을 두고 괜히 어렵고 장황하게 말하는 버릇이다. “불 꺼 주세요”를 “조명 기구를 소등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식이다. 전문 분야일수록 권위 의식이 두드러진다. 한국과 미국의 중앙은행법에는 채권 매매를 굳이 ‘공개시장조작’이라는 어려운 말로 표현한다.

 

무엇인가를 사고파는 일은 너무 평범해서 대부분 나라에서는 그것을 중앙은행법에 담지 않았다. 금융 후진국인 미국만 법률에 담았다. 콤플렉스 때문이다. 미국은 유럽보다 한참 늦은 1900년이 되어서야 금본위제도에 합류했다. 달러화 가치를 유지하려면 중앙은행인 연준이 외국과 수시로 금을 매매해야 했다. 그런 활동을 공개시장조작이라고 표현했지만, 그걸로 국내에서 국채까지 매매하게 될 줄은 몰랐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불황이 찾아왔다. 소비와 투자는 물론 대출까지 감소했다. 대출 이자 수입 감소로 연준이 적자에 직면했다. 그러자 일부 지역 연준(지점) 적자를 면할 요량으로 국내에서 국채를 매입했다. 100년 전 이맘때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경제가 좋아졌다. 오늘날에는 양적 완화라고 부르지만, 당시 지역 실무자들은 ‘가위 효과’라고 불렀다. 국채 매입으로 돈이 풀리면서 실업률이 하락한 모습이 마치 가위 날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부(연준위원회)가 가위 효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국채 매입을 통해 실물 경제에 대한 지방 실무자의 영향력이 커지면, 본부의 권위가 그만큼 약해진다고 걱정한 탓이다. 대공황 때도 실무자의 의견을 묵살하고 공개시장조작을 틀어막았다.

 

참다못한 의회가 1935년 본부의 권위 의식을 질타하면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라는 의결 기구를 신설하고, 거기에 모든 지역 연준을 참가시켰다. 그 위원회의 금리 결정을 전 세계가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다. 아랫사람 말을 경청하는 조직에 힘이 생긴다.

 

-차현진 예금보험공사 이사, 조선일보(2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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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정부’ 앞세운 윤석열, 레이건의 ‘위대한 설득’부터 배워야

 

[천광암 칼럼]

레이건, 여소야대 뚫으려 수시로 野 의원 만나 토론·설득
반대 많던 ‘레이거노믹스’ 입법 성공… 尹 경제·민생 살리려면 야당 만나야

 

“좋지 않은 성적표와 국제 경제위기 상황에서 우리 정권이 출범했지만 국제 상황에 대한 핑계, 전 정권에서 물려받았다는 핑계가 이제 더 이상은 국민에게 통하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한 말이다. 인사 실패 등 뼈아픈 지적이 나올 때마다 “전 정부와 비교할 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방어막을 치곤 했던 윤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유한(有限)책임이 아닌 ‘무한(無限)책임의 리더’라는 뒤늦은 자각에서 나온 말이라면, 의미 있는 변화다. 만시지탄일 따름이다.

윤 대통령의 경제정책은 많은 부분에서 1981∼89년 미국 대통령으로 재임했던 로널드 레이건을 벤치마킹했다. 윤석열 정부가 내건 규제 완화, 세금 감면, 작은 정부가 모두 레이거노믹스의 뼈대에 해당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의 연찬회 발언에는 한편으로 ‘전 정권에서 좋지 않은 성적표를 물려받았다’는 데 대한 억울함도 상당 부분 배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사실 레이건과 비교하면 그럴 일도 아니다.

 

레이건 대통령이 백악관에 입성할 당시 물가상승률은 두 자릿수까지 치솟은 상태였고, 연준 금리는 20%를 넘었다. 인플레이션 퇴치를 위해 연준이 급속히 금리를 올린 결과 사상 초유의 스태그플레이션의 먹구름도 몰려오는 중이었다. 그럼에도 레이건은 재임 기간 중 성장·물가·고용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물가는 12%대에서 5%대로, 실업률은 7%대에서 5%대로 떨어졌고, 일자리 1700만 개가 새로 창출됐다.

윤 대통령이 주목해야 할 점은 레이거노믹스가 여소야대라는 불리한 정치 지형에도 불구하고 의회 입법을 통해 실현됐다는 점이다. 레이건이 집권했을 당시 상원은 여당인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었지만 하원은 민주당이 243석으로 192석인 공화당을 압도했다. ‘큰 정부’와 ‘넓은 복지’를 정책 골간으로 삼는 민주당이 레이거노믹스에 격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리란 것은 뻔한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레이건이 한 선택은 야당 지도부를 포함한 개별 의원들에 대한 지속적인 접촉과 설득, 협상이었다. 취임 이튿날 영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 정상과 통화를 한 레이건이, 3일째에 한 것이 민주당 의원 4명과 만나 규제 완화에 대해 논의한 일이다. 취임 70일째에 존 힝클리의 흉탄이 레이건의 폐를 뚫었지만 그의 야당 설득 행보는 멈춤이 없었다. 70세의 고령이던 그가 수술을 받고 백악관에 다시 출근한 4월 24일부터 레이거노믹스가 구현된 정책을 담은 법안이 통과되는 7월 29일까지 백악관 기록에 나타난 그의 행적을 보자.

5월 4일 4그룹의 민주당 의원 28명과 토론. 5월 6일 다른 그룹의 민주당 의원들과 토론. 5월 11일 공화·민주 양당 하원의원들을 백악관으로 초청. 5월 14일 양당 상원의원 초청 리셉션. 6월 4일 보수적 성향의 민주당 의원들과 미팅. 7월 17일 민주당 의원들과 만나 법안에 대해 상의. 7월 26일 민주당 의원 15명을 캠프 데이비드로 초청해 바비큐 파티. 7월 27일 법안 통과를 호소하는 대국민 연설을 한 후 양당 의원들과 개별 접촉. 7월 28일 양당 의원 43명과 만나 법안 통과를 설득. 하루에 몇 시간씩 전화통을 붙잡고 야당 의원을 설득하는 일도 있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법안은 238 대 195로 하원을 통과했다. 찬성표 중 48표가 민주당에서 나온 것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달 법인세와 부동산세 부담을 낮추는 내용의 세제개편안을 내놨다. 또 이달 26일에는 규제혁신전략회의를 열고 경제형벌 완화 청사진을 밝혔다. 하지만 감세든 규제 완화든 거대 야당이 지배하는 국회의 벽을 넘지 못하면 공허한 ‘입 잔치’에 불과할 뿐이다. 야당이 현 정부의 발목을 잡아 경제 살리기가 지연될 경우, 야당은 야당대로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하지만 ‘야당의 발목 잡기’가 윤 대통령의 실패에 대한 면책 사유가 될 수는 없다. 야당을 설득해서 정책을 성공시키는 것까지가 윤 대통령이 짊어진 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쌍방이 모두 지는 게임이다.

문제는 야당을 어떻게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고 설득할 것이냐다. 여론을 등에 업고 야당을 압박하는 전략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지지율 20%대 정부에는 공상일 뿐이다. 윤 대통령이 ‘경제대통령’으로 성공하기 위해 당장 시급히 배워야 할 것은 경제이론보다 ‘위대한 설득자(The Great Persuader)’, ‘위대한 소통자(The Great Communicator)’로서 레이건의 면모일 것이다.

-천광암 논설실장, 동아일보(22-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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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연준 “고통 있어도 긴축”… 우리도 피할 수 없는 ‘쓴잔’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26일 “얼마간 고통이 있겠지만 물가안정에 실패하면 더 큰 고통이 따를 것”이라며 기준금리 인상 의지를 재확인했다. 연례 국제경제 심포지엄인 잭슨홀 회의 연설에서 파월 의장은 45차례나 ‘인플레이션’을 언급했다. 그는 “1980년대 초 폴 볼커 연준 의장의 인플레 억제 성공은 15년간 물가를 낮추려는 시도가 실패한 뒤에 나온 것”이라며 “지금은 멈추거나 미룰 때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의 발언은 조만간 연준이 긴축 속도를 늦출 것이라는 미국 경제계의 기대와 달랐다. 발언 직후 뉴욕증시 3대 지수는 3% 이상 급락했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 증시도 충격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더욱이 파월 의장은 “(8%대인) 물가가 2% 목표에 근접할 때까지 금리를 계속 올릴 것”이라며 다음 달 0.75%포인트 금리를 올리는 ‘자이언트스텝’을 예고했다. 2.25∼2.50%인 금리가 연내에 최고 4%까지 오를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주 한국은행은 사상 처음 4차례 연속 금리를 올렸지만 0.25%포인트 ‘베이비스텝’에 그쳤다. 같은 폭으로 두 차례 더 올려도 연말 기준금리는 3% 수준으로 미국과 금리가 1%포인트 역전된다. 이창용 총재는 “원-달러 환율 급등으로 한국이 위기에 빠질 가능성은 없다”고 하지만 해외자본 이탈 가능성은 계속 커지고 있다. 미국 긴축의 충격파에서 한국이 빠져나갈 여지가 없다는 뜻이다. 더욱이 중국에서는 코로나19 재확산, 가뭄에 따른 전력 부족으로 공장이 멈춰서고 있다. 올해 중국 성장률이 5.5% 목표의 절반인 2.8%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중국 성장률 하락은 곧바로 한국의 수출 감소로 이어진다. 미국 금리 인상으로 환율이 올라 수입 원자재 가격 부담까지 커지면 한국의 무역수지는 더 악화할 수밖에 없다.

고통이 있어도 물가부터 잡겠다는 미 연준의 의지가 분명해진 만큼 우리 경제의 타격도 불가피해졌다. 정부는 인플레 압력을 높일 재정지출을 억제하면서 재도약을 위한 규제혁신 등 구조개혁의 속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한은 역시 성급한 낙관론에 빠져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동아일보(22-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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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월 “고통 감수하고 금리 계속 올린다”, 한국 경제에도 위기 경보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전 세계 중앙은행 총재들과 가진 연례 경제 심포지엄에서 “가계와 기업에 고통이 따르더라도 물가가 잡힐 때까지 금리를 계속 올리겠다”고 선언했다. 파월 의장은 8분여 연설 동안 ‘인플레이션’을 46번이나 언급하면서, “물가를 못 잡으면 고통이 훨씬 더 커진다” “금리 인상을 멈추거나 쉬어갈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1년 전 같은 모임에서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코로나발) 글로벌 공급망 충격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고 강변하던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물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180도 달라졌다.

 

파월의 초강경 발언은 미국 물가가 7월을 정점으로 하향세로 돌아서고, 금리 인상 속도가 누그러질 것이란 시장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시장에선 미국이 9월 중 기준금리를 3.25% 수준(현재 2.5%)까지 끌어올릴 것을 예고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공포에 질린 미국 증시가 4% 가까이 급락했다.

미국의 가파른 금리 인상은 강(强)달러 현상을 촉발해 이미 전 세계 금융시장에 큰 충격을 던지고 있다. 앞으로 파장이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국 통화정책에 동조해 주요국들이 대거 금리 인상 대열에 동참하면서 주택 가격, 주가가 급락하고, 가계의 이자 부담이 불어나 소비위축 등 실물경제 침체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미국발 금리급등은 가계부채가 1900조원에 이르는 한국 경제에도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한은이 작년 8월 이후 기준금리를 2%포인트 올림에 따라 가계의 연간 이자 추가 부담액이 27조원에 달한다. 한은이 연내에 두 차례 금리를 더 올리면 우리나라 기준금리도 3% 수준에 이르고, 7조원대 추가 이자 부담이 발생하게 된다. 현재 우리 경제는 코로나 사태,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으로 세계 무역이 위축되고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바람에 7월까지 사상 최대 무역적자(150억달러)를 기록하는 등 나라 안팎에서 복합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정공법은 파월 의장의 호소처럼 정부, 기업, 가계가 모두 허리띠를 졸라매고 생산성을 높여 물가보다 더 높은 성장률을 구현하는 것뿐이다. 고통의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선 정치권과 국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소모적 정쟁에서 벗어나 가계 채무 재조정을 돕고, 규제를 풀어 기업 투자를 촉진하는 정책을 하루빨리 입안해야 한다.

 

-조선일보(22-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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