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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별력은 ‘콩나물 교실’ 시절의 교육 키워드] .... [킬러 문항] ....

뚝섬 2025. 4. 2. 10:15

[변별력은 ‘콩나물 교실’ 시절의 교육 키워드]

[어려운 수능 내고 문제집 팔아 돈 벌고, 입시 카르텔 깨야 한다]

[킬러 문항]

[한국 病이 된 ‘사교육 지옥’ 해소, 누가 반대할 수 있나]

 

 

 

변별력은 ‘콩나물 교실’ 시절의 교육 키워드

 

2024년 영국 BBC에서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이라며 수능에 대한 인터뷰를 요청해왔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는 아마도 그날이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하루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터뷰 후 그 시절이 잠시 떠올랐다. “네 시간 자면 시험에 붙고 다섯 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사당오락(四當五落)’ 구호를 책상에 붙여 놓고, 주말도 없이 죽어라고 공부하던 시절이었다. 그 후 거의 30년이 지난 오늘, 고사리손 아이들이 여전히 잠을 아껴 공부를 하며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학원으로 달려가는 ‘웃픈’ 현실을 보았다.

나는 ‘콩나물 교실’ 세대다. 그 시절 우리 교육과 시험의 키워드는 변별력이었다. 요즘 초등학교에는 한 반에 20명이 채 되지 않는 곳이 많다고 한다. 이제는 진지하게 변별력이 키워드였던 우리의 시험과 교육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때가 왔다. 한국은 경제·문화 강국이다. 새로운 교육을 꿈꿀 수 있는 자원이 지금의 우리에게 충분하다.

그뿐만 아니라 인공지능(AI)이 우리 삶과 교육에 거역할 수 없는 일부가 됐다. 이는 더 이상 지식 전달이 교육의 궁극적 목표가 되면 안 된다는 뜻이다. AI가 우리 삶에 더 깊숙이 들어올수록 그 중심에 인간이 없다면 AI는 득이 아닌 해가 될 위험이 매우 높다. 프랑스 화가 폴 들라로슈는 1839년 루이 다게르가 사진술을 선보이던 날 “오늘 자로 회화는 죽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회화와 예술은 죽지 않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 오늘에 이르렀다. 이처럼 잘만 사용하면 AI는 우리 삶과 교육에 큰 변화를 주고 새 방향을 모색하게 할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전제는 건강한 교육 담론들을 하나씩 하나씩 쌓아갈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나는 최근 ‘서울 엄마들’이라는 소설을 썼다. 한국의 교육 전쟁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세 엄마의 이야기다. 그중 한 엄마가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할아버지의 재력이 아이의 행복을 결정한다”는 한국에서 한 번쯤 다 들어봤을 말을 한다. 이 대목을 집필할 때 영국 지인들에게 웃으라고 들려줬는데, 아무도 웃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더니 공부가 뭐기에 가족들이 이렇게 희생해야 하느냐라고 물었다. 이 소설 속 아파트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없다. 까르르 웃고 힘차게 뛰어놀 시간에 아이들은 학원에서 선행을 하고 있다.

한국 학부모들에게 언어교육 강의를 자주 한다.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우리 아이, 너무 늦지 않았나요”이다. 세계적으로 영어에 처음 노출되는 평균 연령은 7세 정도다. 한국의 경우는 개인차가 많지만 굳이 평균을 내면 4세 전후라고 한다. 노출의 시기는 결코 늦지 않다. 슬픈 것은 우리 아이들의 ‘영어 울렁증’이 세계 최고라는 점이었다. 영어를 잘 배우고 못 배우고를 떠나 아이들에게 영어 스트레스가 일찍부터 자리잡고 있다. 모든 아이들이, 그리고 어른들이 영어를 언어가 아닌 시험으로 만나는 것이 이유가 아닐까.

이제는 학습과 교육에 대한 건강한 담론이 필요하다. 멈추고 생각하고, 모색해야 할 시간이다. 지금 시작해야 한다. 이 초석 위에서만 우리의 행복한 미래가 펼쳐질 수 있다.

 

-조지은 영국 옥스퍼드대 YBM KF 한국언어학 석좌교수·‘서울 엄마들’ 저자, 동아일보(25-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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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수능 내고 문제집 팔아 돈 벌고, 입시 카르텔 깨야 한다 

 

20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수능 대비 학원에 ‘킬러 문제, 변형 문제 전문’이라는 홍보 문구가 붙어 있다. 수능 출제 위원 출신 인사가 자신의 경력을 앞세워 수능 모의고사 문제를 만들어 입시 학원에 판 사실이 드러나는 등 사교육계에 ‘이권 카르텔’이 형성돼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뉴스1

 

정부가 수능 출제 위원 출신을 포함한 교육계 인사들과 대형 입시 학원 사이의 카르텔에 대해 실태 점검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수능 출제를 했던 한 사람은 해당 경력을 내세우면서 수능 모의고사 문제를 만들어 강남 대형 학원 등에 판매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구조가 바로 ‘입시 카르텔’일 것이다.

 

우리 입시에서는 변별력을 높인다고 학교 교육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제)을 내왔다. 시험에는 변별력도 반드시 필요하지만 킬러 문항을 번이라도 사람이라면 이것이 거의 병적 현상이라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킬러 문항 대비를 한다고 고액을 요구하는 입시 학원이 성행하고 있는 가운데 높은 킬러 문항 적중률을 홍보해 2010년대 후발 주자임에도 3000억원대 매출을 기록한 학원이 있다고 한다. 놀라운 일이다. 이런 문제를 푼다고 학생들의 학력이나 창의력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수능이 어려울수록 떼돈을 버는 세력이 있다면 그 구조를 뭐라 부르든 깨야 할 구조임이 분명하다.

 

지난 한 해 학부모들이 학원이나 과외, 인터넷 강의 등 사교육에 쓴 돈이 무려 26조원에 육박했다. 부모들은 허리가 휘고, 학생은 입시와 학원의 노예가 되고, 청년들은 자녀 갖는 것도 두렵게 만드는 지경이다. 학원들은 당장 사교육을 시작하지 않으면 의대, 명문대에 갈 수 없다는 공포 마케팅으로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수능이 어려울수록 불안 심리는 더 잘 먹힌다. 이런 구조를 해소해 보자는 논의에 학원들의 이른바 일타 강사들이 일제히 반발하고 나선 자체가 견고한 입시 카르텔과 같은 유착 구조가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킬러 문항을 없앤다고 사교육이 당장 없어질 수는 없다. 근본적으로는 지나친 대학 서열화와 간판 위주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장기적으로 이런 개혁을 추진하되 당장의 교육 지옥에 고통받는 학생·학부모들을 위한 개선에도 노력을 쏟아야 한다. 다만, 올해 수능은 5개월밖에 남지 않은 만큼 급격한 변화로 수험생들을 불안하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조선일보(23-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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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 문항

 

정부와 국민의힘이 실무 당정협 회의를 열어 수능 관련 교육과정 밖 '킬러 문항' 배제와 적정 난이도 확보를 위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19일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 킬러문항 관련 안내문구가 보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소위 '수능 킬러 문항'에 관해 "공교육이 아니라 장외에서 배워야 풀 수 있는 문제로 학생을 평가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불공정한 행태"라고 밝혔으며, '킬러 문항'은 오는 9월 모의평가부터 배제될 방침이다. /뉴시스

 

수능 수학 29번, 30번 문제는 대입 수험생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수학 30문항 중 가장 어려운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제)을 마지막에 배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구인이 풀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배점도 가장 많은 4점짜리여서 문제를 푸느냐 여부로 대학 간판이 바뀐다. 단답형이지만 주관식이라 찍을 수도 없다.

 

▶수학만이 아니다. 수능 과목당 적어도 1문제, 많게는 4문제 정도가 킬러 문항이다. 지난해 11월 수능에서 사회탐구 영역 사회·문화 10번 문항의 오답률은 무려 97.5%였다. 입시 업계 등에서 자체 채점을 통해 분석한 결과였다. 남녀 연령대별 평균 임금이 나온 표를 제시하면서 자료에 대한 옳은 분석을 고르라는 문제였다. 수능 객관식은 5지선다이므로 정답률이 20%는 나와야 정상이다. 전문가들은 “수험생들을 헷갈리게 하는 함정까지 놓은 ”이라고 했다.

 

▶2019학년도 수능에선 ‘국어 31번의 난’이 있었다. 국어 영역인데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을 활용하는 제시문을 읽고 답을 찾아야 했다. 호기심에 풀어본 사람들은 몇 번 읽어도 무슨 문제인지부터 파악하기 어려운 암호문 같았다고 했다. 객관식인데 오답률은 81.7% 달했고 일선 교사들이 화를 냈다. 결국 교육과정평가원장이 고개 숙여 사과하는 초유의 사태로 번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킬러 문항과 관련해 “약자인 우리 아이들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라며 “수십만 명의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한 부적절하고 불공정한 행태”라고 비판했다. 다른 쪽에서는 변별력을 주기 위해 킬러 문항을 출제할 수밖에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그래야 상위권과 최상위권을 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상위권도 모자라 최상위권을 갈라야 하는 것인지, 수능은 대학 수학(修學) 능력을 보는 것인데 이런 문제들이 정말 수학 능력과 관련 있는 것인지 없다. 서울 강남에서는 킬러 문제를 푸는 학원들이 신흥 강자로 부상했다. 킬러 문항이 시험의 변별력을 높이는 쉬운 방법이지만 학생들을 사교육으로 내모는 원인이기도 하다.

 

▶입시 전문가들에게 킬러 문항 출제가 불가피한지 물어보았다. 수능이 4과목인 데다 가중치·가산점 등이 다르기 때문에 킬러 문항이 없어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유럽 등에서는 대입 시험에서 우리나라처럼 ‘킬러’ 운운하는 최고난도 문항은 없다고 한다. 킬러 문항이 입시 편의 때문이라지만 이렇게 우리 아이들을교육 지옥 빠뜨려 나라와 사회, 개인들이 얻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김민철 논설위원, 조선일보(23-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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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病이 된 ‘사교육 지옥’ 해소, 누가 반대할 수 있나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19일 오전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학교교육 경쟁력 제고 및 사교육 경감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의 문제는 수능 출제에서 배제하라”고 지시한 이후 사교육 개혁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교육부 수능 담당 국장과 수능을 주관하는 교육평가원장이 사임했다. 교육부 장관은 “학원만 배 불리는 상황에 대책을 내놓지 못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윤 대통령은 최근 수능의 이른바 ‘킬러(초고난도) 문항’을 언급하며 “약자인 우리 아이들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런 사교육 해소 논의에 학원들의 이른바 일타 강사들이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유명 사회문화 강사는 “교육은 백년대계인데 대통령의 즉흥 발언으로 모두가 멘붕 상태”라고 했다. 국어 영역 강사는 “더 좋은 대안이 없다면 섣부른 개입은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 원인”이라면서 아주 화가 났다는 뜻의 ‘극대노’ 해시태그를 붙였다. 수학 강사는 “애들만 불쌍하다”고 했다. 이들은 학원 연봉만 100억원이 넘는 사람들로 알려져 있다. 스스로 2017년 “소득세가 130억원”이라고 밝힌 사람도 있다. 다른 강사들도 SNS와 유튜브 등에서 수입차와 고급 주택을 과시하곤 해왔다. 이들은 입시 지옥에서 고통 받는 학생, 부모들을 대상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이다. 입시 지옥이 이들의 시장(市場)인 셈이다. 이들의 반발은 사교육 지옥을 해소해보자는 논의에 대해 ‘그게 될 것 같으냐’는 비아냥으로 들린다.

 

작년에 한국 부모들이 사교육에 지출한 돈은 26조원이나 됐다. 실제로는 더 많을 것이다. 사교육은 부모 허리를 휘게 만들고, 젊은이들이 자녀 갖기도 두렵게 만들고 있다. 사교육비를 대는 부모 능력이 자식들의 입시 경쟁력을 결정하는 상황이다. 일타 강사라는 말이 한국 말고 어디에 또 있나.

 

사교육 문제는 단순히 학교 교육, 또는 입시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여러 결함이 얽혀 있는 깊은 병증(病症)의 하나다. 사교육 지옥에서 큰돈을 버는 사람들이 마음의 부담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그 한 증상일 것이다. 역대 정권이 사교육 문제를 풀어보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하나를 해결하려 하면 다른 곳에서 부작용이 나온다. 정부도 사교육에 대해 깊은 논의를 거쳐 문제에 접근하고, 말 하나에도 조심해야 한다.

 

-조선일보(23-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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