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은 정부 2중대가 아니다]
[재벌 집단 청문회, 제도 안 바꾸면 또 하는 날 올 것]
[기업이 왜 'NO'라고 못하느냐고? 정치권력과 기업 간의 종속 관계.. ]
전경련은 정부 2중대가 아니다
[조형래 칼럼]
노무현 정부 시절 전경련은 재벌 정책 놓고 대립하면서도 기업 도시와 한미 FTA 이끌어내
새로 출발하는 전경련도 국가 현안에 과감히 목소리 내고 정부도 시키는 일만 하라는 낡은 사고 버려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전경련 회관 앞 국기게양대에 전국경제인연합회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연합뉴스
노무현 정부 시절의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은 파이터였다. 정부 초기부터 재벌 정책·노사정책을 놓고 사사건건 부딪쳤다. 노 대통령이 전경련 신년 포럼에 참석해 “지배력을 부당하게 행사하는 대기업 집단의 건전하지 못한 형태가 달라지지 않았다. 지나친 경제력 집중이 사회 통합을 저해한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비판하면, 전경련은 여지없이 “(대통령은) 경제 살리기에 올인 해야 한다. 기업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풀어달라”고 맞섰다. 2003년 9월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서는 노 대통령을 향해 “영국의 대처 총리나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리더십이 아쉽다”고 직격탄을 날려, 취재하던 기자들의 입이 떡 벌어지게 했다. 전경련 회장이었던 손길승 SK 회장이 SK 비자금 사건으로 검찰 소환을 앞둔 시점이었는데, 저러고도 무사할까 싶었다.
노 대통령은 전경련에 대해 여러 차례 대로(大怒)했다고 한다.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 주재 행사에 전경련 회장만 제외하거나 노사정(勞使政) 회의에 전경련 대신 대한상의 회장을 재계 대표로 참가시키기도 했다. 전경련에 맞서는 새로운 경제단체를 만들자는 말까지 나왔다. 그런데도 전경련 수뇌부들은 ‘패싱’을 당하든 말든 꿋꿋하게 버텼다. 자신들이 시장경제와 기업가 정신을 지키는 보루라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노 대통령도 뒤끝은 없었다. 전경련과 늘 껄끄러웠지만 전경련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했고 재계가 주창했던 ‘기업 주도의 도시 개발’ 콘셉트를 수용했다. 그 산물이 파주와 아산·탕정의 LG·삼성 디스플레이 시티와 삼성 화성 반도체 단지 개발, 그리고 지지층의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였다.
전경련의 위상은 역설적으로 보수 정권에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는 친(親)기업 정부를 표방했으나 실제로는 대기업 계열사 간 내부거래에 칼을 들이댔고 휘발유 가격 담합 조사, 통신비 인하,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위원회 설립 등 대기업 그룹을 작심하고 압박했다. 전경련을 파트너라기보다는 군기를 잡아야할 대상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상징적인 사건이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낙제점 발언이었다. 2011년 3월 서울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하러 온 이 회장은 “현 정부의 경제성적표는 몇 점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경제가) 상당히 성장을 해왔으니 낙제점을 줘서는 안 되겠지요”라고 답했다. 이 한마디로 삼성전자·삼성물산 등 삼성 주요 계열사가 잇따라 세무조사를 당해 수천억원의 추징금을 물었고, 이건희 회장은 이 사건 이후 단 한 번도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재계 1위 그룹의 이건희 회장마저 고초를 겪는 것을 목격한 다른 그룹 회장들도 회장단 회의 참석을 꺼리며 몸을 숙였다.
박근혜 정부에서 전경련은 더 쪼그라들었다. 박 정부의 창조경제나 역사 교과서 국정화, 극우 시민단체 지원 등 정권 코드 맞추기에 급급했고 전경련 운영도 갈수록 폐쇄적으로 변해갔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경련 최고 의결 기구 격인 전경련 회장단 회의 개최를 비공개로 전환한 것이다. 전경련은 통상 2~3개월에 한 번씩 그룹 총수들이 참석하는 회장단 회의를 개최하고 주요 의결 사항을 외부에 공개했다. 이 회의가 주요 현안에 대한 재계의 목소리를 대변해 온 터라 여론의 관심도 컸지만, 비공개로 전환되면서 전경련 사무국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 장치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만약 전경련 회장단 회의가 정상적으로 운영됐다면 전경련의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모금이 국정 농단 사태로 비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새롭게 출발하는 전경련이 위상을 되찾으려면 정부가 요구하는 일만 하는 정부 2중대 역할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자유 시장경제와 국가 미래를 위한 현안에 대해서는 진영논리를 넘어서 거침없이 쓴소리도 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 정부도 전경련을 국가 미래를 경영하는 파트너로 인정해야 한다. 전경련을 대통령 해외 순방 때 세우는 들러리나 버튼만 누르면 달려오는 돈 지갑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조형래 부국장 겸 에디터(경제담당), 조선일보(23-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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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집단 청문회, 제도 안 바꾸면 또 하는 날 올 것
6일 국회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국정조사 1차 청문회가 열렸다. 재벌 총수 9명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28년 전 5공 비리 청문회에 이어 두 번째다. 권력과 모종의 유착이 있었느냐는 의혹을 받으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기업 총수들이 한꺼번에 청문회에 불려나온 자체가 개탄할 일이다.
이날 청문회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을 독대해 어떤 혜택이나 대가를 약속하고 미르·K스포츠재단에 돈을 받아냈느냐를 밝히는 것이 핵심이었다. 재벌 총수들은 한결같이 대가성은 부인했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정부 요청이 있으면 기업이 거절하기 힘든 건 한국적 현실"이라고 했다. 특히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이 여야 의원들로부터 집중 질문을 받았다. 삼성이 유일하게 최씨 측에 직접 돈을 건네고 딸 정유라의 승마 지원을 한 결과가 됐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죄송하다" "적절치 못한 지원이 있었다"고 수십 번도 더 사과해야 했다. "미래전략실에 부정적인 인식이 있으면 없애겠다"고도 했다. 이날 청문회를 통해 전경련의 해체도 불가피해졌다.
28년 전 총수들이 불려 나올 때와 비교하면 우리나라 경제 규모는 10배 커졌다. 대한민국 대표 기업들의 규모와 위상은 그 이상으로 커졌다. 세계 무대에서 경쟁하는 글로벌 기업이 됐다. 그럼에도 권력이 손 벌리면 기업이 돈 대는 후진적 관행은 28년 전이나 달라진 게 없다. 검찰 공소장에 기업들의 대가성 등 범죄 혐의는 드러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공범 이미지가 굳어지고 있다. 정권 탓 하면서 "억울하다"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날 청문회는 세계에 보도됐다.
재벌 총수 집단 청문회는 이게 마지막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기업 지배구조와 경영이 더 투명하고 선진화돼야 권력이나 비선 실세의 압력에 당당할 수 있다. 기업이 권력을 두려워하는 것은 먼지털기식 표적 검찰 수사와 세무 조사 때문이다. 권력이 검찰과 국세청을 자의적으로 동원할 수 없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 정부가 틀어쥐고 있는 수많은 인허가권에 대한 규제 개혁도 필요하다. 기업 약점을 잡고 갖은 청탁을 하는 국회의원들의 행태도 사라져야 한다.
-조선일보(16-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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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왜 'NO'라고 못하느냐고? 정치권력과 기업 간의 종속 관계..
2011년 2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금은 고인(故人)이 된 스티브 잡스 애플 CEO를 만난 적이 있다. 샌프란시스코까지 날아간 오바마 대통령이 실리콘밸리 기업인들과의 저녁 자리에서 "아이폰을 미국에서 생산할 수 없느냐"고 묻자, 잡스는 "미국에 제조 공장을 유치하려면 박사 학위 소지자가 아니라 숙련된 근로자를 더 양성해야 한다. 그러기 전에는 중국의 일자리가 미국으로 돌아올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애플이 중국에서 무려 70만명의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으면서도 최고 권력자의 요청을 한마디로 거절한 것이다. 잡스는 그러면서 "오바마 대통령이 더 기업 친화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단임 대통령으로 끝날 것"이라고도 했다. 이듬해 오바마 대통령이 잡스의 요구대로 제조 근로자 양성을 위한 프로그램까지 내놨지만 잡스는 오바마 대통령의 호소를 끝내 외면하고 눈을 감았다.
미국 대표 제조기업 GE의 잭 웰치 전(前)회장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오바마 대통령을 공격했다. 공화당 지지자인 잭 웰치는 2012년 9월 미국 실업률이 오바마 취임 이후 최저치로 하락하자, "시카고 출신은 무슨 짓이든 한다"고 통계 조작 의혹까지 제기했다. 이들뿐만 아니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나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같은 기업인들도 스스럼없이 대통령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하고 정부 정책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고도 이 기업인들이 무사한 것을 보면 우리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기업인 중에서는 정부에 대해 쓴소리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쓴소리했다가 호되게 보복을 당했던 일이 수없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2011년 3월,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서 정부의 경제정책에 점수를 매겨달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과거 10년에 비해 상당히 성장을 해왔으니 낙제점을 주면 안 되겠죠"라고 딱 한마디 했다가 공개 사과는 물론, 삼성전자가 세무조사를 받고 수천억원을 추징당했다. 칭찬에 인색한 이 회장의 화법(話法)을 잘 아는 삼성 경영진이 아무리 해명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김승연 한화 회장의 경우는 검찰이 비자금 수사를 하겠다고 10여 차례나 압수수색을 하고도 별다른 성과가 없자, 애매한 '배임'으로 걸어 기어이 구속했고,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찍힌 효성그룹은 IMF 외환위기 때 정부 지침에 따라 부실 계열사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분식회계로 수년째 검찰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다.
지금 정치권은 기업에 '왜 박근혜 대통령의 불법모금에 NO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비판하지만 현재의 정치 사회 풍토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다. 경제개발을 시작한 지 50년이 지났고 우리나라 대기업이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글로벌 기업의 반열에 올랐지만 정치권력과 기업 간의 종속 관계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정치권과 검찰에서는 돈을 낸 기업인들을 심판대에 올려놓고 적폐를 근절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이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정치권력이 먼저 변하지 않는 한 다음 정권에서도, 그다음 정권에서도 기업은 정치권의 요구에 굴신(屈身)할 수밖에 없다.
-조형래 산업2부장, 조선일보(16-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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