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홈쇼핑의 상습 거짓말 “이번이 마지막 방송”]
[TV홈쇼핑의 규제 먹이사슬]
TV홈쇼핑의 상습 거짓말 “이번이 마지막 방송”
“해외 원료 수급 비상으로 인해 ‘영원히’ 마지막 생방송입니다.” 지난해 한 TV홈쇼핑 방송에서 건강식품을 판매하던 쇼호스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더는 볼 수 없다던 이 제품은 한 달 뒤 오히려 원료 함량을 높여 같은 방송에서 재판매됐다. 또 다른 홈쇼핑에선 방송 중에 구매해야만 냉동고를 사은품으로 준다고 했다. 쇼호스트는 “20분 지나면 저 냉동고 사라진다”며 시청자들을 재촉했다. 하지만 방송이 끝난 뒤 방송사 온라인몰에서 똑같은 구성으로 살 수 있었다.
▷TV홈쇼핑에서 시청자들을 기만하는 과장·허위 광고가 지난해부터 다시 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26일 내놓은 ‘2022 방송통신심의연감’을 보면 지난해 상품판매방송 제재건수는 총 86건으로, 전년의 62건보다 39% 늘었다. 올해 들어서도 5월까지 55건이 제재를 받아 지난해 수준을 웃돌고 있다. 허위·기만·오인 표현 등으로 시청자들을 속인 경우가 가장 많았다.
▷부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거나 허위 또는 기만적인 내용을 방송하는 경우 소비자에게 피해를 유발한다. 한 홈쇼핑 방송에선 내장지방에 따른 체형 차이를 보여준다며 두 명의 모델을 비교했다. ‘같은 키, 같은 몸무게. 하지만 라인은 이렇게 다르다’며 지방을 제거해준다는 건강식품을 홍보했다. 하지만 실제론 두 모델의 신장과 체중은 달랐다. 한 의류 판매 방송에선 “리넨 함량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리넨 100%예요”라며 호들갑을 떨었는데 알고 보니 리넨 함량은 22%에 그쳤다.
▷수량에 제한이 없음에도 ‘한정 판매’라고 광고하거나 ‘처음’ ‘단 한 번’ ‘1위’ 등을 강조한 경우도 많다. “얼마나 애착 있게 만들었으면 이게 세계에서 지금 부동의 1위입니다”라고 했던 그 삼푸. 알고 보니 특정 브랜드의 판매 라인 내에서만 1위였다. 원산지를 속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 침대 판매 방송에선 제품에 사용된 원단을 설명하며 “원단 자체를 프랑스에서 가져온다” “이 원단은 프랑스에서 짜야 이 색깔이 나온다”고 했지만 실제론 중국에서 가공·수입됐다.
▷구매를 유도하는 홈쇼핑의 목소리가 다급해진 것은 경기 침체, 온라인 채널의 확산 등으로 소비자들이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과도한 경쟁에 쇼호스트가 방송 중에 욕설을 하고, 제품을 강조하기 위해 불행한 일로 고인이 된 모 연예인을 언급하는 지경까지 됐다. 소비자를 기만하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위에 대해 엄격한 관리·감독과 제재가 필요하다. 소비자들이 홈쇼핑을 찾는 것은 방송사를 믿기 때문이다. ‘국민에게 사랑받고 중소기업에 힘이 되겠다’는 한국TV홈쇼핑협회의 캐치프레이즈가 민망하게 느껴져서야 되겠나.
-김재영 논설위원, 동아일보(23-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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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홈쇼핑의 규제 먹이사슬
시청률 높은 앞번호 채널 받아 사업권 따면 1~2년 사이 흑자
반면 3~5년마다 재승인 심사… 권력 기관에 로비할 수밖에
우리나라 홈쇼핑 업계에는 독특한 먹이사슬 구조가 있다. 규제의 먹이사슬이다. 이 구조는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 대한 수사로 다시금 도마 위에 오른 롯데홈쇼핑 사건에서 잘 드러난다. 3년 전 납품업체로부터 20억원대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대표이사를 포함한 임직원들이 줄줄이 쇠고랑을 차더니, 이번에는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전 전 수석의 으름장 한 번에 3억원이나 되는 돈을 홈쇼핑과는 전혀 무관한 e스포츠협회에 상납한 정황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고 있다. 중소 납품업체에 대해서는 수퍼 갑(甲)으로 군림하고, 권력기관 앞에서는 꼼짝 못 하는 '3류' 기업의 전형이다.
여기에는 속사정이 있다. 우리나라 홈쇼핑 업체들은 뒤 번호 쪽에 채널이 몰려 있는 미국·영국·일본 등 선진국과는 달리, 시청률이 가장 높은 지상파와 종편 채널 사이에 번호를 부여받는 특혜를 누리고 있다. 홈쇼핑 채널들이 앞쪽 번호를 받은 게 국민의 시청권 침해라는 비판이 쏟아져도 규제 기관에서 애써 못 들은 척한다. 이 덕분에 TV홈쇼핑 업체가 무려 7개나 되는데도 사업권을 따내면 예외 없이 1~2년 내에 흑자를 내는 기적을 연출하고 있다. 사업권만 받으면 땅 짚고 헤엄치는 장사를 할 수 있기에 중소 납품업체에 대해서는 방송 출연과 편성을 무기로 엄청난 권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해외에서는 유례가 없는 규제도 받는다. 대표적인 것이 면세점처럼 3~5년마다 돌아오는 재승인 심사다. 롯데홈쇼핑같이 빌미를 제공했을 때에는 납품업체를 포함해 수만 명이 십 수 년간 이어온 사업을 단번에 접어야 할 수도 있다. 선진국에서는 상업방송인 홈쇼핑의 경우 좋은 채널을 배정받는 특혜도 없고 재승인 같은 규제도 없지만, 우리나라는 규제 기관이 쉽게 돈을 벌게도 해주고 또 반대로 생살여탈권까지 쥐고 있다. 갈수록 심화되는 반(反)기업·반부자 정서를 이용하면 종아리 때리고 넘어갈 사안에 대해서도 목 부러뜨리겠다고 압박할 수 있다. 이런 구조 속에서는 국회의원 등 권력기관을 상대로 로비를 많이 할 수밖에 없다.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한국 e스포츠협회 비리 의혹과 관련 피의자 신분 조사를 받기 위해 검찰로 들어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지상파나 종편 재승인의 경우도 미국·영국 등에서는 공공(公共) 자산인 주파수를 사용하는 지상파의 경우만 8~10년 단위의 재승인 심사를 할 뿐, 민간 통신망을 이용하는 종편에 대해서는 아예 재승인 심사 자체가 없다. 설령 재승인 심사를 하는 경우에도 장기간 모니터링을 거쳐 문제가 있는 것을 개선하도록 하는 수준이지 우리나라처럼 완장 찬 권력과 홍위병들이 나서서 방송사 경영진에게 "네 죄는 네가 알렷다"는 식으로 윽박지르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
비단 방송뿐 아니다. 우리나라는 정부가 시장에 너무 깊숙이 간여한다. 인공지능 알파고가 3000년 넘은 인간 바둑을 평정하고 민간 기업들이 화성에 우주기지를 만들겠다는 시대에도 정부는 여전히 쌍팔년도 식으로 시장 경쟁과 가격을 통제하려 든다. 해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규제로 범법자를 양산하고, 이를 빌미로 새로운 규제를 만들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통신요금 인가제라는 게 있다. 이 규제는 통신업체가 가격을 올릴 때는 물론, 가격을 내릴 때도 정부의 허락을 받도록 한다. 통신업체 간 요금 경쟁을 원천적으로 차단해 놓고는 대통령 말 한마디에 통신요금 할인을 강제하는 앞뒤 안 맞는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런 규제와 낡은 관행이 진짜 적폐다. 전 정권, 전전 정권에서 미운털이 박힌 사람들을 줄줄이 구속하는 것보다 이런 규제의 먹이사슬을 깨는 게 적폐 청산이다. 삼성전자·LG전자·현대자동차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데에는 해외 시장 위주로 사업 구조를 재편해 이런 규제에서 자유로워진 게 핵심이다. 금융이나 유통·통신 등 이른바 내수 규제 산업에서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기업이 단 한 군데도 없는 이유를 곱씹어 봐야 한다.
-조형래 산업2부장, 조선일보(17-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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