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國史-文化] 708

[당대의 미남 시인을 불귀의 땅으로 내친 ‘붉은 편지’]

당대의 미남 시인을 불귀의 땅으로 내친 ‘붉은 편지’ [전봉관의 해방 거리를 걷다]고향 北에 남았다 비극 맞은 ‘모던보이’ 백석과 고당 조만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히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1938) 백석은 조선일보 기자로 임용된 1934년 이후 토속적 세계와 도회적 정서가 어우러진 독창적인 시를 연이어 발표하면서 일약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떠올랐다. 또한 180cm가 넘는 헌칠한 키에 또렷한 이목구비, 세련된 더블..

[경복궁 전각 헐고 전시관 지어… 경성 박람회 100만명 다녀가]

경복궁 전각 헐고 전시관 지어… 경성 박람회 100만명 다녀가 [염복규의 경성, 서울의 기원]식민통치 5주년 ‘발전상 과시’ 의도… 아관파천후 빈 경복궁을 장소로 선택궁궐의 전각 대거 공매하거나 철거… 벼-면화 등 일본산 품목 50일 전시총독부, 지방-학교에 단체관람 지시… 방문객들에 도로 정비 성과도 과시 1915년 일제 식민통치 5주년을 기념해 경복궁에서 열린 ‘조선물산공진회’ 행사장 전경(위쪽 사진). 위쪽에 광화문(점선 안)과 세종로가 보인다. 일제는 장소를 마련하려 경복궁의 전각을 다수 공매하거나 철거했다. 당시 조감도를 통해 경복궁이 얼마나 훼손당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동아일보DB·국립고궁박물관 제공  《1915년 일제가 연 ‘공진회’ 행사. 경성의 도시 개발, 정비사업인 ‘시구개정’ 사업은..

[55세에 유배 당한 추사… 절대고독 속 ‘세한도’가 탄생했다] ....

[55세에 유배 당한 추사… 절대고독 속 ‘세한도’가 탄생했다][추사가 그린 ‘세한도’ 속 집, ‘이것’ 덕분에 숨통 트였다]['세한도' 소장史에 담긴 한일 父子] [1000억 땅에 세한도까지… 代를 이은 기증] [10번 주인 바뀐 세한도, 하마터면 일본서 폭격에 사라질 뻔] [세한도(歲寒圖)에 얽힌 비밀]   55세에 유배 당한 추사… 절대고독 속 ‘세한도’가 탄생했다 [손관승의 영감의 길]제주 별도봉에서 돌아본 김정희 세한도 180주년 제주도 별도봉 산책코스. 왼쪽은 제주항이고 그 옆으로 화북포구. /손관승 제공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세한도(歲寒圖)’를 보러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가 뜻밖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작품 탄생 180주년을 맞아 오랜만에 공개되었다는 사실보다 내가 주목한 건 5..

[고려거란전쟁과 양규 장군] [고려거란전쟁의 영웅들] ....

[고려거란전쟁과 양규 장군] [고려거란전쟁의 영웅들] [거란전쟁과 병자호란] [강감찬과 귀주대첩] [망하는 길로 가니 亡國이 온다] 고려거란전쟁과 양규 장군 거란 40만 대군에 맞서 흥화진 지켜… 포로 3만명 구해 지난달 KBS 대하 사극 '고려거란전쟁'이 종영했어요. 드라마 장면 중 시청자들 마음을 사로잡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고려 서북면 도순검사를 지낸 무신 양규 장군이 거란군과 전투를 벌이다 전사한 장면이에요. 지금까지 고려거란전쟁에서 양규 장군의 활약은 강감찬 장군 등에 비해 덜 알려졌어요. 하지만 조선 초기 집현전 유학자였던 양성지가 세조에게 위대한 업적을 세운 장군들 위패를 모시자고 건의했을 때, 신라의 김유신, 고구려의 을지문덕, 고려 강감찬과 함께 양규 장군도 포함했답니다. 흥화진을 ..

[광개토왕이 남긴 ‘묘지기 관련 당부’ 유언] [귀주대첩]

[광개토왕이 남긴 ‘묘지기 관련 당부’ 유언] [귀주대첩] 광개토왕이 남긴 ‘묘지기 관련 당부’ 유언 [이한상의 비밀의 열쇠] 광개토왕의 유언을 포함한 1775자가 새겨진 광개토왕릉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한국 고대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인지를 물어보면 응답자 가운데 다수는 고구려 19대 광개토왕을 지목하곤 한다. 그 이유는 그가 친히 군사를 이끌고 전장을 누비며 고구려를 일약 ‘동북아의 패자’로 견인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온 세상을 호령하던 광개토왕은 재위 22년이 되던 서기 413년 10월, 3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그의 장례식은 이듬해 9월 성대히 거행되었고 왕위를 이은 장수왕은 그에 즈음하여 무덤 가까이에 거대한 비석을 세웠으니, 그것이 바로 유명한 광개토왕릉비다. 그런데 이 비석에..

[패전 후 일본인 71만명, 단돈 1000엔씩 들고 조선을 떠났다]

패전 후 일본인 71만명, 단돈 1000엔씩 들고 조선을 떠났다 [전봉관의 해방 거리를 걷다] 한강의 기적 마중물 된 일본인 귀속 재산 “1945년 8월 9일 이후 일본 정부, 공공기관, 단체, 회사, 개인 등이 소유한 일체의 재산은 1945년 9월 25일부로 미군정청이 접수하고 그 소유권을 행사한다.”(미군정 법령 제33호, 제2조. 1945.12.6.) 해방 당시 한국은 ‘세계 최빈국’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본 축적 면에서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2위에 해당하는 상대적으로 산업화된 지역이었다. 1930년대 이후 공업화 정책에 따라, 한반도의 산업 구조는 광공업 비율이 53%, 제조업 중 중화학공업 비율이 51.3%에 달했다. 다만, 그중 80%가 일본 정부와 일본인 소유였기 때문에 산업화의 과실이 ..

[해방 이후 평양, 광복 직후엔 '민족주의'… ]

해방 이후 평양, 광복 직후엔 '민족주의'… 소련군 나타나며 갑자기 '공산주의' 3월 26일 북한과 일본은 평양 김일성 경기장에서 축구 국가대표 경기(A매치)를 치른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A매치 경기가 열리는 것은 4년여 만입니다. 2019년 10월 한국과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경기를 김일성 경기장에서 치른 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한국이나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평양은 매일 뉴스에 나오지만 가장 멀고 잘 모르는 도시라고 할 수 있지요. 지금의 평양은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요? 일제강점기로 돌아가 당시 평양 지역의 정치·사회적 특징을 알아보고, 이어서 해방 이후 평양에서 일종의 임시정부 기능을 맡았던 '평안남도 건국준비위원회'의 활동을 살펴보겠습니다. 기독교 중심지였던 평양 평양..

[‘건국전쟁’ 62만명, 이제야 걷히는 이념 전쟁의 장막 뒤] ....

[‘건국전쟁’ 62만명, 이제야 걷히는 이념 전쟁의 장막 뒤] [지우다 못해 조작까지 해서 없애버리는 이승만의 흔적] ‘건국전쟁’ 62만명, 이제야 걷히는 이념 전쟁의 장막 뒤 [강경희 칼럼] 한강 다리 끊고 도망간 ‘런(run)승만’이라고? 전시 외교 올인하고 망명정부 거부하면서 끝까지 싸우다 죽겠다고 머리맡에 권총 놔둔 ‘건(gun)승만’이었다 다큐멘터리 ‘건국전쟁’이 개봉 17일 만에 관객 60만명도 넘었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제일 황당하게 와닿았던 장면은 한강다리 끊고 도망간 ‘런(run)승만’으로 조롱받고 폄하되고 있다는 대목이었다. 김덕영 감독이 3여 년간 제작하면서 101분 필름에 다 보여주지 못한 미반영 분량이 훨씬 많을 것이다. 김일성과 스탈린의 6..